[눈]김종필 전총리 오늘 영결식, 스스로 쓴 묘비명 풀어보니
2018-06-27 05:36
지난 23일 별세한 고(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김 전 총리의 장례식은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충남 부여 선산가족묘에 안장된다.
마지막 가는 날 그가 남긴 자명비문을 읽는 것은 감회가 있다. 이 글은 2015년 부인 박영옥씨가 임종한 직후 써둔 것이다. 비문에 등장한 평소 애용하던 구절들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思無邪 無恒産 無恒心 年九十而知八十九非 笑而不答
내 삶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삿됨이 없었고
정치에서 깨달은 것은
국민의 경제가 제대로 안되면 민심이 안정될 수 없다는 것
내 나이 구십에 팔십구년의 허물을 알겠구나
그의 서훈을 놓고 쿠데타와 철권통치 전력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으나, 그가 남기고자 한 말의 뜻은 이 땅의 현대사를 살아간 정치인생의 담담한 성찰로서 경청할 만하다.
사무사를 얘기한 까닭은, 권력의 지위에 있었으나 권력에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2인자와 킹메이커로 살았던 자신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맹자의 항산항심을 말한 것은 정치의 바탕이 결국 경제에 있다는, 오랜 정치생활의 핵심적인 깨달음을 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 논어의 거백옥을 데려온 것은, 삶을 돌아보니 권력과 야망이 헛되더란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도 자주 쓰던 이백의 소이부답은, 마음을 다 비운 이의 여유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마지막엔 아내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인간적 여운을 남겼다.
* 묘비명 원문
「思無邪」를
人生의 道理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을
治國의 根本으로 삼아
國利民福과 國泰民安을 具現하기
위하여 獻身盡力 하였거늘
晩年에 이르러
「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嘆하며
數多한 물음에는
「笑而不答」하던 者-
內助의 德을 베풀어준 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銘 雲庭 自僎
書 靑菴 高崗
* 풀어 읽기
“사무사를 인생의 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무항산이무항심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아 국리민복과 국태민안을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진력하였거늘 만년에 이르러 연구십이지팔십구비라고 탄하며 수다한 물음에는 소이부답 하던 자 -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 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운정(김종필)이 스스로 써서 새기고 청암 고강이 글씨를 썼다
* 비문에 나온 구절들의 출전
思無邪 : 공자 "詩三百 一言而蔽之 曰思無邪"
시경 3백편 가운데 한 말로서 덮는다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
無恒産 無恒心 : 맹자 "無恒産 無恒心 有恒産 有恒心"
지속적인 생산이 없으면 지속적인 마음도 없으며, 지속적인 생산이 있으면 지속적인 마음이 생긴다
年九十而知八十九非 : 논어 "遽伯玉 行年六十 知五十九年之非"
'거백옥'은 나이 60세에 59년의 잘못을 깨닫는다
즉 본인은 나이 90에 89년의 잘못을 깨닫는다는 뜻
笑而不答 : 이태백의 시, 山中問答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나에게 질문하길 무엇 때문에 벽산에 사느냐?
나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하니 스스로 마음 한가롭다네.
복숭아꽃 물따라 흘러가니
별천지요 인간세상이 아니로다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