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총사가 간다-경남] "갱수로 옮기간다" vs "그래도 태호 밀어주야제"…요동치는 '바닥민심'

2018-06-10 18:49
"대통령 도울 후보 뽑아야 않겠나"
'보수 텃밭 진주·마산서 변화 바람
"둘다 모르겠다. 여론조사 못믿어"
일부에선 정치혐오증 드러내기도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경남지사 후보가 10일 경남 창원시 동마산시장에서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윤지은 기자]

[삼총사가 간다]는 국회팀 '민완기자' 3명이 6·13 지방선거 현장에서 만나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그릇'입니다. 뜨겁거나 혹은 싸늘하거나, 생생한 민심을 가감없이 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 딸이 '대통령 도와줄 김갱수를 뽑아야 않겠나' 하데. 맨날 한나라당 캤는데, 여기 많이 달라짓다."(진주 중앙시장 화장품가게 사장 오연희·61·여)

"우리 태호 밀어주야제! 바빠 죽겠는디 무신 여론조사? 전화 오면 딱 끊어 삐지."(창원 마산번개시장 잡화상 김필례·74·여)

'6·13 지방선거'를 앞둔 마지막 주말, 이번 선거의 '최대 격전지'인 경남의 표심은 막판까지 요동치고 있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경남지사 후보와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를 바라보는 도민들의 마음은 '반반(半半)'이다. 민주당과 한국당, 두 후보가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게릴라 유세'를 하며 경남 전역을 바삐 누비고 다니는 이유다.

10일 경남 진주시와 창원시 중 마산 지역의 전통시장 민심을 청취해본 결과, 경남이 '보수 텃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남도민들이 종전과 달리 민주당 쪽에도 마음을 내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경남은 1995년 첫 지방선거 이후 한 번도 민주당에 곁을 내준 적이 없는 곳이다. 특히 진주와 마산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곳은 경남에서도 보수세가 강하다고 분류돼 서부경남의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지역이다.

민주당에 대한 높은 호감도는 젊은층(20·30대)에서 두드려졌다. 진주시 이현동 한 아파트 정문에서 만난 변모씨(37)는 "원래 이쪽은 보수가 강했는데 이제 변하는 것 같다"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잘못해서 여당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말했다. 마산역 인근 샤부샤부가게 직원인 이동엽씨(29)는 이미 사전투표를 마쳤다고 했다. 정확한 표심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민선 6기에서 도정을 책임졌던 홍준표 한국당 대표에 대한 피로감을 표했다. 그는 "저는 전국적인 민심의 흐름을 보고 잘할 수 있는 후보를 뽑았다"며 "이 동네에 요즘 김경수 후보가 자주 온다.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당 지도부에 대한 실망감과 정부·여당의 '높은 지지율'이 돌아선 민심에 한몫한 듯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여당 대세론'을 거론하며 흔들리는 민심을 전했다. 진주 중앙시장에서 '꿀빵'을 파는 임한택씨(62)도 "경남 민심이 한국당에서 민주당으로 옮겨가고 있다. '드루킹 사건'만 아니었으면 김경수가 될 텐데, 누가 이길지 모르겠다. 잘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심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마산 번개시장에서 만난 70대 할머니는 "우리 마산은 한국당 표밭이다. 그런데 요샌 민주당 공기가 좋아서 누가 될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많이 올라왔더라. 드루킹도 별로 영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과점 사장(67)도 "이젠 마음이 바뀌었다. 문 대통령 도와줄 김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 드루킹 사건은 TV에 많이 나오던데, 김경수 후보가 떳떳하지 못하다면 선거에 나왔겠나. 당당하니까 나왔을 거라 믿는다"고 소신을 밝혔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이른바 '창원 빨갱이' 발언에 대한 들끓는 민심도 엿볼 수 있었다. 마산번개시장에서 마늘을 까던 할머니는 "홍 대표가 말실수를 크게 했던데, 그게 사과한다고 없던 일이 되나. 이런 일이 쌓이니깐 마산 사람들 마음이 민주당으로 기우는 것"이라고 격노했다. 동마산시장에서 만난 김도연씨(24·여)는 "홍 대표의 이미지가 안 좋아지고 있는게 느껴진다. 김태호 후보도 영향을 받겠지만 시장, 시의원, 구의원 후보들에게 큰 타격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류영춘씨(61) 역시 홍 대표를 향해 "국민을 무시하는 게 도를 넘었다. '창원에 빨갱이가 많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싶다. 창원엔 더 이상 그런 구시대적 발언 먹히지 않는다. 이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그럴 것"이라고 쓴소리를 남겼다. 정혜영씨(41·여)도 "홍 대표는 입을 열 때마다 짜증이 난다. 입 닫고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우리가 무슨 빨갱이냐. 여긴 문 대통령 당선 전까진 계속 보수 텃밭이었는데, 색깔이 바뀐 게 괜히 바뀐 게 아니"라고 맹비난했다. 최근 김경수 후보의 팬이 됐다는 신진아씨(34·여)는 "이 동네는 세월호 리본만 가방에 매달고 다녀도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라며 홍 대표의 발언을 에둘러 비판했다.

이날 김경수 후보가 유세차 들른 동마산시장은 술렁였다. 고려건강원 주인아주머니는 "아이고, 갱수씨~ 사진보다 인물 좋네?"라며 꽉 끌어안았다. 예상보다 좋은 반응에 김경수 후보 캠프 분위기는 고조됐다. 관계자들은 "왜 이렇게 반응이 좋아? 원래 이런 동네 아니잖아"라며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상인들은 "문 대통령도 잘하고 매번 오는 시의원 후보 때문에 이번엔 도와주고 싶다"며 엄지(1번)를 내밀었다. 김경수 후보는 "우리 잘하지예? 세뜨로 팍팍 밀어주이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경수 후보는 경남의 경제가 전국 지표에서 최하위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장 상인들을 자극했다. 그는 "경남의 경제를 위해 지원과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후보가 누구냐"며 "문 대통령과 15년 호흡해 온 제게 맡겨 주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에서 잘못했으면 확실히 심판하고 갈아치워야 시민이 무서운 줄 안다"고 김태호 후보를 견제하기도 했다.
 

김태호 자유한국당 경남지사 후보가 10일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거리유세를 하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손인해 기자]

흔들리는 민심은 최근 여론조사에도 반영된 듯하다. 방송 3사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경수 후보의 지지율은 43.3%로 김태호 후보(27.2%)를 16.1%포인트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경남에선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다수의 '샤이보수층'이 있기 때문에 선거 결과를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이날 바닥 민심에서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샤이보수층'이 감지됐다. 정치 혐오증으로 대안 부재에 대해 답답함을 드러내는가 하면 민주당 자체와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의심을 표하기도 했다.

진주에서 이동 중에 만난 택시기사 윤갑현씨(58)는 "둘 다 모르겠다"면서도 "여론조사에서 김경수 후보가 우세하다고 하는데 여기는 원래 야당이다. 전라도가 1번에 100% 몰아주듯 경남에선 70%가 2번을 찍어줘야 한다. 인물은 김태호가 나은데 한국당이 요즘 개판 아니냐"고 말했다. 마산번개시장에 장을 보러온 60대 조모씨 부부는 "여론조사 믿을 게 못 된다"며 "나이 든 사람들은 '2번'이다. 귀찮아서 여론조사에 참여 안 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마산시장의 50대 남성도 "투표할지 말지 모르겠다. 한국당도, 민주당도 믿음직하지도 않다. 한국당이 드루킹 사건을 걸고넘어지는데 알고 보면 한국당도 똑같을 것 같고 민주당을 뽑자니 확신이 없다"며 속마음을 밝혔다.

시장 상인들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경제 심판론'과 남북관계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띄었다. 꽃집 사장님인 이모씨(65)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장사가 안돼서 집세도 못 낼 정도"라고 토로했다.

진주중앙시장에서 멸치가게를 하는 김모씨(64·여)는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다. 재작년에 세금 20만원 냈는데 이번엔 70만원을 냈다.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 이리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씨는 "문 대통령이 일자리 잘 만든다고 해놓고 젊은 애들 취직도 안 되고. 알게 모르게 북한에 다 퍼다 준 것 아니냐. 우리는 다 산 인생이고 아들과 아들의 자식들은 어떻게 살란 말이냐"고 꼬집었다.

진주중앙시장에서 오랫동안 속옷가게를 운영한 이성용씨(57)도 최근 우호적인 남북관계에 대해 "북한은 자기 친척을 죽이고 강한 사람들인데, 그런 김정은을 어떻게 믿고 퍼주나"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정권 바뀌고 이 나라 살면서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 자체가 싫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샤이보수층'의 결집으로 선거 초반 김경수 후보와 김태호 후보 간 큰 폭으로 벌어졌던 여론조사 지지율 격차가 선거가 다가올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태호 후보가 홍 대표와 거리를 두고 독자적으로 선거운동에 매진하면서 바닥 민심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일부에선 김태호 후보를 찍어 민주당으로 쏠린 민심에 대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은 '드루킹 사건'을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봤다. 마산번개시장에서 콩을 다듬던 70대 할머니는 "무조건 김태호"를 외쳤다. 그러면서 "요즘 김태호가 힘들지 않나. 태호가 8년 동안 잘했다. 내 또래 사람들은 다 김태호를 좋아한다"고 거듭 설명했다. 김경수 후보 이야기를 꺼내자 "그 사람은 감옥에 가야지"라고 잘라 말했다.

이날 진주 유세현장에서 김태호 후보는 "한국당이 그동안 실망을 많이 시켜드렸다. 용서를 구하기조차 민망하다. 그렇지만 지금 나라가 한 곳으로 너무 기울어졌다. 저를 꼭 좀 지켜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