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藥속] '기부마라톤'의 힘, 빗속을 달리게 하다
2018-05-15 19:30
굿피플·유디치과가 손잡은 마라톤 대회
희귀난치질환자·구강건강 소외아동 지원 등 취지
궂은 날씨에도 남녀노소 4800명 참여
희귀난치질환자·구강건강 소외아동 지원 등 취지
궂은 날씨에도 남녀노소 4800명 참여
‘빗속을 뛰고 있다. 한 시간여쯤 뛰고 있지만 비로 젖은 옷에 강풍까지 불면서 온 몸은 차갑게 식었다. 팔과 다리는 언제부턴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뛰어야 할 길만 눈에 들어왔다. 아직 2㎞는 더 남은 듯하다.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이 다소 황당한(?) 수난은 지난달 초 어느 날 부서 선배로부터 받은 뜻밖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마라톤 뛰어보겠냐’는 제안에 무심코 수긍 의사를 내비쳤더니, 곧바로 일정이 날아들었다. 대회명은 ‘기부마라톤대회’. 개최시기는 한 달여 남은 5월 12일이었다.
‘유디치과와 굿피플이 함께 하는 기부마라톤대회’는 희귀난치질환자와 구강건강 소외아동 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희귀난치질환과 적잖은 치료비가 들어가는 구강질환 등은 다른 경우에 비해 환자와 가족이 겪게 되는 신체적·경제적 고통이 비교적 크다. 이는 신약과 신의료기술 개발과 연구가 한창인 헬스케어 분야에서 꾸준히 직면하고 있는 난제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굿피플'과 치과그룹 유디치과도 이러한 취지로 지난해부터 기부마라톤대회를 여는 데 손을 잡았다. 마라톤 대회 참가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까지 한다는 취지에 참가자도 몰려들었다. 지난해 1800여명, 올해는 3000여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무심코 참가하게 된 마라톤이었지만, 행사 취지에 의지가 불탔다. 뛰어야 할 코스가 10㎞로 정해지자, 돌연 일반인(?)을 대표해 스스로의 한계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지난달 9일 마라톤 완주를 위한 첫 달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포기는 일렀다. 이틀 간격으로 저녁 일정까지 조정하며 뛰었다. 가급적 걷는 것은 피했다. 운동을 반복하면서 다리 근육이 풀렸고, 일주일 만에 계단을 일상적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됐다. 숨 고르기는 여전히 힘들었지만, 천천히 적응해갔다. 지난 8일 8㎞ 완주를 마지막으로 약 한 달간 15회를 뛰었다. 8㎞ 완주 기록은 54분. 자신이 났다.
방심은 금물이라 했나. 마라톤 당일 불행히도 비가 세차게 내렸다. 제대로 뛸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날 마라톤대회에서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많은 참가자들이 우산·우의와 함께 출발선을 넘었다.
의문감에 이들과 함께 출발선을 넘고 500m 가량은 함께 걷다 문득 뛰기 시작했다. 그간의 노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체온이나 시야 등에선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의외로 ‘비’라는 악조건은 뛰는 데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 10㎞ 완주 기록은 1시간 6분.
오히려 주최 측이 뜻밖의 날씨에 운영상 일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후원사인 유디치과를 비롯해 여러 협찬업체 부스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참가자 간 배려와 질서는 ‘기부’라는 행사 취지만큼이나 돋보였다.
덧붙이자면 여름 ‘우중주(雨中走)’에는 챙 있는 모자, 바람막이 재킷, 7부 길이 스포츠웨어 정도는 준비해주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