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협상 목적은 ‘6.25 방지’… 실패했지만 통일의지 발산 계기

2018-04-17 16:52
남북협상 70주년 기념 학술회의 개최…이완범 교수 "김구·김규식 선생 추진한 회합이 최선"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우사김규식연구회 주최로 열린 '남북협상 70주년 기념 학술회의-1948년 남북협상과 한반도의 미래'에 참석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70년 전 남북협상의 목적은 전쟁을 막는 것이었다. 김구는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며 길을 떠났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와 우사 김규식연구회(회장 김재경)가 17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1948년 남북협상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공동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남북협상의 역사적 재평가’ 주제발표를 통해 남북협상에 대해 “삼팔선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영달 추구하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이뤄낸 역사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남북협상은 1948년 1월부터 4월 사이에 미국과 유엔의 주도에 의한 5‧10 단독선거가 현실화됐던 시점에 남북 지도자간 협상을 추진하면서 단독선거를 반대했던 사람들의 통일운동을 말한다.

남한에서는 김구와 김규식이 주도해 북한의 김일성, 김두봉을 만나 담판했던 요인회담과 사김회담(四金會談)이 중심이다.

정파에 따라 이 운동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5‧10 선거에 참여해 정부를 수립했던 이승만과 한민당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남북협상이 초대받은 잔치에 참석해 들러리만 섰다거나, 김구와 김규식이 김일성과 소련에게 놀아난 것으로 평가 절하했다.

반면 이 협상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후 통일운동의 한 지침을 제공했으며 한국인의 평화통일 의지를 발산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교수는 “최선의 방향은 김구, 김규식 선생이 추진한 남북 협상에 따른 정치지도자 회합”이라며 “이를 통해 남북 단독선거나 북한이 만들어 놓은 일방적 헌법을 무효화하고 통일된 틀에 맞춰 하는 통일이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협상 실패에 대해 “아주 숭고한 이상이었지만 미국과 소련에 의해 좌우되던 외세에 의해 규정된 시절이었기 때문”이라며 “남한과 북한의 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들이 다 모였으면 소련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남북협상 당시에도 평양에 있었던 김일성은 서울에 오지 않았다. 6.25때 말고는 한 번도 내려온 적 없다. 김정일, 김정은도 그렇다”면서 “김정은이 DMZ넘어 판문점에 온다. 3차 정상회담이 잘 되서 북미간 수교도 이뤄지고 서울에서 열리는 내년 삼일절 기념식에도 김정은이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