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말라드 ①] 드러난 민낯, 재벌의 '갑질병'

2018-04-18 08:31

재계가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로 신음하고 있다. 노블레스 말라드는 프랑스어 'Noblesse(고귀한 신분, 귀족)'와 'Malade(병든, 아픈)'가 합쳐진 말로, 병들고 부패한 귀족이라는 의미다.

사회 지도층이 모범을 보이고 사회적 기여를 통한 실천이 요구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는 정반대의 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좀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SNS를 통해 확산되며 과거 갑질 행각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내 재벌 오너가 3~4세의 갑질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는 반(反)재벌 정서 확산과 함께 한국 자본주의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해외 매체 중 한 곳은 "한국 기업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족한 도전정신과 오너리스크"라고 꼬집었다.

◆오너가 3·4세부터 '갑질' 행태 늘어
창업주들은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사업을 펼쳐 국가에 이바지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정신이 강했다. 또 남다른 경영 철학으로 많은 이들에게 모범이 됐다. 고(故) 이병철·정주영 등이 '존경받는 기업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다.
2세들은 창업주의 뜻을 이어받아 그룹의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노력을 경주했다. 경영권을 승계받은 후 특권을 받았다는 생각보다는 기업 가치를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경영 일선에 뛰어든 3~4세들 중 일부는 올바른 '기업가정신'을 가졌다기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채 안하무인 격의 행동으로 직원과 회사 전체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이는 곧 기업인에 대한 존중과 존경은 사라지고 반기업 정서를 더욱 팽배하게 하고 있다. 조 전무의 갑질 행태 이후 ‘대한항공 사명 변경’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재계는 이러한 반 기업정서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까 우려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재벌 일가의 갑질 행태로 인해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더 악화되는 모습"이라며 "한 사람의 일탈 행동으로 해당 기업에 리스크를 주고 회사 임직원들의 허탈감이 커지게 한다"고 꼬집었다.

◆변화하는 국민 정서
일각에서는 재벌가의 교육방식에 대해 지적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다 보니 재벌 일가를 보는 국민의 시선은 더욱 차갑기 마련이다.
사회적 시스템마저 갑질을 막을 수가 없다. 물의를 일으키고도 여론이 잠잠하다 싶으면 슬그머니 다시 일선에 나서는 행태를 보면 그렇다.
일례로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은 '땅콩 회항' 파문 직후인 2014년 12월 대한항공 부사장을 비롯해 칼호텔네트워크와 한진관광 등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떠났다가 지난달 29일 한진그룹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 수장으로 복귀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존경받는 기업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제도적으로 올바르게 흘러가는 시스템을 만들고 기업가정신을 제대로 갖춘 기업인을 적극 발굴·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자체적으로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벌 3세라고 해서 중요한 의사결정권자로 인정하기보다는 보다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을 경영하려는 이들에게는 보다 엄중한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다"며 "특히 경영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경영자가 나타날 경우 향후 기업가치 및 주주 이익을 훼손한다는 비판에 작면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