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공녀' 이솜 "28살에 만난 미소, 30살이 되면 더 가까워질까?"
2018-03-27 09:01
영화 ‘소공녀’(감독 전고운) 속, 주인공 미소는 그야말로 독특하다. 가사도우미 3년 차. 하루 수당 4만 5천 원으로 집세, 약값, 생활비를 쪼개가며 생활하지만 위스키와 담배, 사랑하는 남자친구 한솔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새해를 맞아 물가가 오르자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는 대신, 과감히 ‘집’을 포기하며 자발적 홈리스가 되기로 결정하는 여행자.
미소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처럼 보이지만, ‘N포세대’라 불리는 ‘요즘’ 관객들과 가장 잘 맞는 캐릭터기도 하다. 모든 것을 포기하라 강요받는 현실 속,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분투하는 미소의 모습은 많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와 ‘용기’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칫 ‘민폐’ 캐릭터로 분류될 수 있는 미소를 사랑스럽고, 낭만적으로 가공한 것은 배우 이솜(28)의 덕이 컸다. 영화 ‘마담뺑덕’을 시작으로 ‘좋아해줘’, ‘범죄의 여왕’, ‘그래, 가족’, ‘소공녀’에 이르기까지 담백하고 정직한 성장을 거둔 이솜은 어느새 자신만의 연기법을 완성, 관객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었다.
“‘소공녀’는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인 것 같아요. N포세대, 요즘 청춘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애초 미소 역은 30대 중후반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배우를 찾기 힘들었던 ‘소공녀’ 제작진은 광화문시네마의 전작 ‘범죄와의 여왕’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이솜을 캐스팅하기로 결정했다. 전 감독의 ‘결정’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이종교배 속, 배우 이솜이 무게중심을 잘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제가 워낙 광화문 시네마를 좋아해요. ‘범죄의 여왕’ 속 쿠키 영상을 보고 ‘소공녀’를 처음 접했죠. 그땐 막연히 ‘와, 재밌겠다. 언제 개봉하지?’라는 호기심이었어요. 담배와 위스키를 좋아하는 30대 여성을 캐스팅하신다고 하기에, 저는 아니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인연이 닿아 작품을 하게 되었어요. 시나리오를 봤는데 ‘이건 무조건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소라는 캐릭터가 현실에서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많이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에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이솜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짚으며 그저 캐릭터로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사실을 밝혔다.
“사실 미소는 제 눈으로 봤을 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죠. 한 가지 의문이 들면 끊이지 않고 솟아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비현실적, 판타지적인 느낌대로 캐릭터를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서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앞서 많은 작품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한 이솜이지만, 완전한 원톱 체제 주인공은 ‘소공녀’가 처음이었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작품을 끌고 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현장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어요. 그러나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책임감은 있었죠. 미소가 중심인물이기 때문에 중심 잡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던 것 같아요. 막힐 때마다 감독님과 대화로 풀어나갔고요. 거기다 출연 배우들이 워낙 베테랑이고 연기도 너무 잘하셔서요. 하하하. 그분들께 해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어요.”
유난히 담배와 인연이 깊었던 비흡연자 배우 이솜. 그는 “‘마담뺑덕’부터 ‘범죄의 여왕’, 드라마 ‘이번생은 처음이라’까지 담배를 꽤나 피웠다”며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비흡연자다 보니, 담배 피우는 연기가 어렵지 않으냐고 많이들 물으세요. 그런데 워낙 흡연 연기를 많이 해서 어렵지 않더라고요. 거기다 미소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잖아요. 흡연자 관객들이 영화를 봤을 때, 거짓으로 보이는 게 싫었어요. 최대한 ‘진짜’처럼 보이려고 했죠. 위스키는 ‘소공녀’ 촬영을 하면서 마시게 됐어요. 미소가 가장 좋아하는 술이자 감독님이 좋아하는 술이죠. 하하하. 캐릭터 공부도 할 겸, 감독님과 가까워지려고 위스키를 배웠어요.”
이솜은 극 중 미소를 이야기하며 현실과 이상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가장 ‘현실’에 부딪쳤던 건 아마 경제적인 부분 아닐까요? 저도 그 문제에 아주 자유로웠던 건 아니에요. 그때그때 고민들도 있었고요. 그래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이상적으로 살고 싶어요. 추구하고는 있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들도 많네요.”
그렇다면 이솜에게 위스키와 담배 같은 존재는 무엇이 있을까? 이솜은 커피와 영화, 산책을 꼽으며 자신만의 소확행(小確幸)을 밝히기도 했다.
“커피랑 영화, 산책인 것 같아요. 커피는 집에서 직접 내려 마시고, 영화는 모든 표를 모아둬요. 산책은 촬영장에서도 즐기곤 해요. 이런 것들이 제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인 것 같아요. 영화표는 중학교 때부터 모으기 시작했어요. 제가 CA활동으로 ‘영화 산책반’을 가입했었는데, 극장서 최초로 본 애니메이션 ‘헤라 클래스’ 티켓도 가지고 있어요. 영화표가 오래되면 잉크가 날아가거든요. 그래서 코팅까지 하고 있죠. 하하하.”
이솜은 극 중,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남자친구 한솔에 대한 애정 역시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항상 호흡을 맞추고 싶었던 배우 1순위”였던 안재홍을 언급, “말이란 게 항상 중요하다”며 내내 신기하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정말 중요한 게, (말한 것들이) 그대로 실현되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늘 함께 호흡을 맞추고 싶었던 배우 1순위로 (안)재홍 오빠를 꼽아왔어요. 그런데 ‘소공녀’로 만나게 됐고, 너무 기쁘고 좋더라고요. 오빠는 정말 인간미가 넘치는 배우예요. 매력도 넘치고 성격도 좋죠. 정말 최고였던 것 같아요.”
그는 미소가 아닌 이솜의 시선에서 두 사람이 사랑스럽게 보였던 장면을 꼽기도 했다.
“많은 분이 한솔과 미소를 떠올리면, 추운 겨울 단칸방서 부둥켜안고 ‘봄에 하자’고 말하는 걸 떠올리시는데 저는 작고 애틋한 느낌을 더 좋아해요. 계단에서 헤어질 때의 모습이나, 한솔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발령이 났다고 말할 때 미소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요. 특히 미소가 먹던 꼬치를 바닥에 던지는데, 한솔이가 그걸 주워오면서 까만 봉지에 담는 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더라고요.”
스스로도 인복(人福)이 많다는 이솜. 그는 지난 언론시사회에 직접 참석, 영화는 물론 기자간담회까지 모두 관람한 동료 배우이자 아티스트컴퍼니 이사인 정우성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언론시사회 당일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오신 줄도 몰랐어요. 나중에 기자간담회 때 보니 기자분들과 함께 앉아계시더라고요. 하하하. 나중에 제게 ‘잘 봤어’ 한마디 하고 가셨는데 너무 감사했어요.”
바쁘게 올해를 시작하게 된 이솜. 그에게 2018년의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여유롭게 그리고 신중하게 차기작을 고르고 싶어요. 가장 큰 건, ‘소공녀’를 잘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고요.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도록 홍보도 열심히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