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라진 밤' 김상경 "김강우·김희애 캐스팅, 신의 한 수였죠"

2018-03-15 02:16

'사라진 밤'에서 중식 역을 맡은 배우 김상경[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지금까지 4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 서태윤을 시작으로 ‘몽타주’ 청호, ‘살인의뢰’ 태수와 ‘사라진 밤’ 중식에 이르기까지. 배우 김상경(46)은 각양각색 성격을 가진 형사들을 연기해왔다. “더 이상 형사 역할은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와는 달리, 김상경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색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사라진 밤’(감독 이창희)은 국과수 사체 보관실에서 시체가 사라진 후 그를 쫓는 형사 중식(김상경 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남편 진한(김강우 분), 사라진 아내 설희(김희애 분) 사이에서 벌어지는 하룻밤을 담은 작품이다.

최근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김상경은 극 중 형사 중식 역을 맡았다. 한때는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망가져 버린 강력계 형사팀장이다. 건성으로 현장을 살피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촉으로 팀원들이 발견하지 못한 단서들을 찾아내는 베테랑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기존 형사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더라고요. 헐렁하고, 껄렁거리고…. 너무 재밌더라고요. 일본 영화에서나 많이 보던 괴짜 캐릭터가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제가 이제까지 맡았던 형사 캐릭터는 너무 진지했었잖아요? 정석적으로 정곡을 찌르는 인물들이었죠. 그런데 중식은 온갖 너스레를 떨면서 사체 보관실을 파헤치고 다니는데 그런 모습이 신선했어요. 밀폐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중식의 동적(動的)인 모습이 공간의 한계를 상쇄시키기도 했고요.”

'사라진 밤'에서 중식 역을 맡은 배우 김상경[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우려도 없었다. 괴짜 같은 중식의 성격을 보며 ‘형사 캐릭터’에 대한 부담도 잊은 터였다. 거기다 ‘사라진 밤’ 시나리오는 군데군데 강력한 한 방이 존재, 김상경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다. 특히 그는 영화 속 ‘인트로’ 부분에 사로잡혔다고.

“인트로 부분에 ‘가수 심수봉의 젊은 태양이 흐른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저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무심코 노래를 재생했죠. 그런데 음악과 글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 거예요! 노래가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신나는 것 같은데 우울한 느낌이 들어요. ‘신의 한 수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운 인트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을 만났을 때도 제일 먼저 ‘왜 이 곡을 인트로에 썼느냐’고 물었죠. 감독님은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라는 가사에 꽂혔대요. 영화 이야기를 암시하는 듯한 느낌도 들고, 전반적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죠. 인트로를 읽으면서도 이 감독에 대한 신뢰가 쌓였던 것 같아요.”

김상경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라진 밤’과 우중식 캐릭터를 위해 김상경은 곧장 캐릭터 몰입에 돌입했다. ‘1급 기밀’ 촬영 당시보다 7~8kg 정도 체중을 불렸고 캐릭터의 전사를 짜거나 의상을 입고 다니는 등 캐릭터에 젖어 들기 위해 노력했다.

“캐릭터의 전사를 만드는 건, 중앙대 재학 시절부터 해왔던 거예요. 자전 소설처럼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만들고, (인물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죠. 또 중식 캐릭터를 몸에 붙이기 위해서 의상을 입고 출근하고, 퇴근했어요. 그대로 입고 나와서 일하고 또 그대로 입고 숙소에 들어가 잠을 잤죠. 하하하.”

'사라진 밤'에서 중식 역을 맡은 배우 김상경[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점차적으로 중식 캐릭터를 ‘입게’ 된 김상경. 그는 평소에도 캐릭터를 만나기 전, 완벽하게 캐릭터에 맞는 생활을 한다고 털어놨다.

“동구 역을 맡은 배우 서현우와는 ‘1급기밀’에서도 같이 호흡을 맞췄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사라진 밤’ 촬영 전) 저를 보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왜 이렇게 살이 쪘냐’고. 하하하. ‘1급기밀’ 찍을 땐 술을 한 잔도 안 마셨거든요. 날렵한 이미지를 위해서 체중조절을 하고, 캐릭터를 몸에 익히려고 (군인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최귀화가 그렇게 서운해하더라고. 하하하.”

술과 담배에 빠져 사는 중식 역할을 하며 김상경은 이창희 감독과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집도 가까운” 터라, 언제든지 시간이 나면 이 감독을 불러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술을 마시면서 시나리오에 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이 시나리오의 약한 점이 뭘까?’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판단한 건, 과거를 반복적으로 회상한다는 것이었어요. 보는 이들이 지칠 수 있잖아요. 많은 이야기를 한 덕분인지 이 감독이 편집을 세련되게 잘 풀어낸 것 같아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워낙 황소고집인 친구라 자신이 원하는 자기가 생각한 건 어떻게든 이루려고 하는데, 그만큼 (실수에 관해서는) 인정도 빠르고 깔끔해요. 신인 감독답지 않았어요.”

'사라진 밤'에서 중식 역을 맡은 배우 김상경[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김상경은 함께 호흡을 맞춘 김희애와 김강우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김희애 선배, (김)강우의 캐스팅도 신의 한 수죠. 설희 역을 김희애 선배가 하면서 영화의 색깔이 달라졌어요. 내내 ‘살았나? 죽었나?’ 의문을 갖게 하고, 조금만 나와도 딱딱 신을 잡아주잖아요. 극 중 대사인 ‘당황할 때, 귀엽더라?’를 들을 땐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요. 그건 선배만이 할 수 있는 카리스마예요. 강우는 그야말로 ‘도전’이라고 봐요. 아내를 죽이고, 바람을 피우는 등 어려울 수 있는 캐릭터를 연민이 느껴질 정도로 잘 표현해냈어요. 내가 봐도 연민이 생긴다고 할 정도면 정말 잘한 거죠. 대체가 안 돼요.”

베테랑 배우들과 신인답지 않은 감독이 만들어낸 스릴러 작품. 김상경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안 보면 안 되는 스릴러 영화의 탄생”이라며 작품에 대해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랜만에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장르물·스릴러가 나온 것 같아요. 콤팩트하게 찍었고 러닝타임도 짧아서 지지부진하지 않죠. 거기다 (관객들이) 뒤통수 맞고 멍하게 나오니까. 아마 다시 봐도 재밌을걸요? N 차 관람을 부르는 영화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