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 '친부모 찾아' '파벌에 떠밀려'..사연 안고 온 19명 '푸른 눈' 한국 선수들

2018-02-06 07:33
귀화 선수 7종목 19명 출전…이들이 한국행 택한 이유는
소치 보면서 올림픽 열망한 맷 달튼, 엄마 찾아 한국 찾은 입양아 출신 박윤정·이미현, 복수혈전 꿈꾸는 랍신


'푸른 눈'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19명이 출격을 준비 중이다. 오는 9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만을 목놓아 기다리던 이들이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태극 마크'를 달았지만 목표는 똑같다. 금메달이다.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이들 귀화 선수의 면면을 살펴본다.

◇ 남자 아이스하키 - '한라성' 맷 달튼의 소망
 

[사진=대한아이스하키협회]


귀화 선수가 가장 많은 종목은 11명이 속해 있는 아이스하키다. 이 중에서도 남자 아이스하키 팀에만 7명이 소속돼 있다. 28명의 전체 엔트리 중 30% 가까이 차지한다.

미국 출신인 마이크 테스트위드를 제외하면 맷 달튼, 마이클 스위프트, 브라이언 영, 브락 라던스키, 알렉스 플란트, 에릭 리건 등 6명 모두 캐나다 출신이다.

'에이스'는 골리(골키퍼)를 맡고 있는 달튼이다. 대표팀 전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3월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급한 달튼은 '한라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러시아 리그에서 뛰던 달튼은 소치 동계올림픽의 뜨거운 열기를 현지에서 직접 체험했다. 올림픽 무대를 동경하게 된 이유다.

달튼은 자신의 헬멧에 이순신 장군 그림을 그려넣기도 했다. 광화문의 동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정치적 의미를 담았다며 착용을 불허했다. 한국 대표팀은 오는 15일 오후 9시 강릉 하키 센터에서 체코와 첫 경기를 가진다.

◇ 여자 아이스하키 - "엄마 찾아 온 한국" 박윤정
 

[사진=대한아이스하키협회]


여자 아이스하키 팀 역시 4명의 귀화 선수로 전력을 보강했다. 미국 출신의 박윤정, 랜디 희수 그리핀과 캐나다 출신의 임진경, 박은정이다.

박윤정의 경우 정확하게 따지면 '귀화'가 아니라 '국적 회복'이다. 생후 4개월이던 1992년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된 박윤정은 7살 때부터 동생 해나 브랜트와 함께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동생 해나는 미국 대표팀에 뽑혀, 언니와 동생의 맞대결이라는 이색 대결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박윤정에게 이번 올림픽은 메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친모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박윤정이란 이름을 고집하는 것도 입양 전에 친모로부터 얻은 이름이다. 박윤정은 "특별한 단서가 없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서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그게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남북 단일팀은 12일 오후 9시 관동 하키 센터에서 스웨덴과 맞대결한다.

◇ 바이애슬론 - "복수는 나의 것" 티모페이 랍신
 

[사진=연합뉴스]


바이애슬론의 경우 4명의 귀화 선수가 한국인으로 출전한다. 남자 선수인 티모페이 랍신, 알렉산드르 스타로두벳츠와 여자 선수 안나 프롤리나, 에카테리나 아바쿠모바 모두 러시아 태생이다.

이들 중 눈길을 모으는 이는 티모페이 랍신이다. 랍신은 국제대회에서 우승만 6번한 바이애슬론의 대표 선수다. 그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랍신은 지난해 SBS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러시아 대표팀에서 저를 훈련에 안 데려갔다"고 밝힌 바 있다. 파벌 경쟁에서 밀렸다고 생각한 랍신은 귀화를 선택했다. 러시아로 귀화 후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빅토르 안' 안현수를 연상시킨다. 랍신 또한 조국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다. 11일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남자 스프린트 10㎞ 경기가 무대다.

◇크로스 컨트리 - "국내 제패는 중학생 때" 김 마그너스
 

[사진=연합뉴스]


크로스 컨트리 국가대표 김 마그너스는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중국적이었던 그는 2015년 노르웨이 국적을 포기했다. 김 마그너스는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엄마의 나라 한국을 세계에 스키로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마그너스는 5일 현재 기준으로 만 19세에 불과하다. 어렸을 때부터 '본고장' 오슬로에서 스키를 탔기에 이미 중학생 때부터 국내 무대를 휩쓸었다. 2016년 동계유스올림픽에 이어 지난해에는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이제는 올림픽이다.

◇루지 - 에일린 프리쉐의 두 번째 도전
 

[사진=대한루지경기연맹]


에일린 프리쉐는 대한루지경기연맹의 회심의 카드다. 독일 출신인 프리쉐는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번번이 탈락한 것. 결국 프리쉐는 2015년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프리쉐가 은퇴를 번복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것은 사터 슈테펜 감독 때문이다. 한국 루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슈테펜의 설득으로 프리쉐는 한국에서 두 번째 도전을 이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슈테펜 감독은 SBS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리쉐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만큼 독일에서 못다 이룬 루지에 대한 꿈과 열정을 평창에서 펼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라고 전했다. 프리쉐는 평창 올림픽 이후에도 한국에 남아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일 예정이다.

◇피겨 - 한복 입고 아리랑 추는 알렉산더 겜린
 

[사진=연합뉴스]


피겨 아이스댄스 국가대표 알렉산더 겜린은 미국 보스턴 태생이다. 겜린은 함께 피겨를 시작한 쌍둥이 여동생 대니얼과 짝을 이뤘다. 미국 국가대표에도 선발된 적이 있었던 남매의 꿈은 여동생의 부상으로 끝난다. 골반뼈가 부러질 정도의 심각한 부상으로 대니얼은 빙상을 떠난다.

파트너를 잃은 겜린이 피겨를 포기하려던 찰나 새로운 파트너, 재미동포 민유라를 만난다. 이중국적 상태였던 민유라가 올림픽에 도전하기 위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자, 겜린도 두 말 없이 어렵게 얻은 파트너 뒤를 따랐다. 겜린은 2016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겜린과 민유라는 프리스케이팅 곡으로 '아리랑'을 선택했다. 의상 역시 한복을 개량했다. 해외 심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이들은 완고하다. 한국의 전통 음악과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의지다.

◇프리스타일 스키 - 강사 하러 왔다가 졸지에 국가대표? 이미현
 

[사진=연합뉴스]


프리스타일 스키 국가대표 이미현이 한국에 발을 디딘 것은 2015년. 스키장 강사로 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의 실력은 '강사급'을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3살 때부터 양아버지를 따라 스키를 탔던 까닭이다.

이미현은 1994년 미국 가정에 입양됐지만, 8살 때 양부모의 이혼을 경험한다. 하루 16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 수영장 청소와 햄버거 가게 점원, 의용소방대원까지 겸했다. 남는 시간에는 오직 스키에만 몰두했다. 미국 국가대표를 꿈꿨으나 경기 도중 다리가 부러지면서 이미현의 꿈 또한 좌절된다.

그러나 이미현의 실력은 이미 국내에서는 국가대표 이상이었다. 대한스키협회는 이미현에게 귀화를 권유하고, 이미현 역시 친부모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를 받아들인다. 이미현이라는 이름 또한 귀화 후 복지재단을 통해 확인한 '진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