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과 평창올림픽, 직면한 공포와 위대한 대회 사이

2018-01-29 15:11

“국제정세에 휩쓸려 많은 공포와 위협에 직면했던 제24회 서울올림픽은 올림픽 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위대한 대회로 기록되게 되었습니다.”(사마란치 전 IOC위원장, 김운용의 '위대한 올림픽' 서문)

1988년 서울올림픽의 앞과 뒤에, 사마란치는 왜, 강렬하게 대비되는 서술어를 붙였을까. 우선 '많은 공포와 위협에 직면했던' 서울올림픽 이전의 상황을 보자. 1972년 뮌헨올림픽에는 아랍 테러 조직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습격했고,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는 남아공 인종차별 묵인과 관련한 항의로 아프리카 32개국이 출전을 거부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여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불참했다. 1984년 LA올림픽 때는 구소련과 동유럽국가, 그리고 쿠바가 참가를 거부함으로써 앙갚음을 했다. 테러와 보이콧으로 얼룩졌던 올림픽이 16년 만에 진정한 글로벌 평화축제로 거듭나는 대회였다.

'올림픽 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위대한' 대회였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세계 질서가 재편된다. 1988년 이후 소련은 해체되었고 동유럽 공산국가들도 급속히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올림픽은 냉전의 시대를 녹이는 용융점(溶融點)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대회는 한국역사를 바꿔놓았다. 당시 군사정권으로 이어지던 권위적인 국가였던 이 나라는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외형적·내면적 자극을 받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글로벌 수준에 맞춰 나가고자 하는 동기가 생겨난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과 비교해 그 이후는 한국에 대한 세계의 시각이 달라졌고, 우리 스스로도 크게 바뀌었다. 축제의 콘텐츠는 스포츠였지만, 축제의 과정과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국가 전반의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 1987년 민주화 열망의 폭발은 그 결과였으며 1990년대 남북 화해무드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로부터 딱 30년 뒤인 2018년 2월 또 한번의 올림픽이 이 땅에서 열린다. 겨울올림픽으로는 처음 유치하는 대회를 우리는 이제 열흘 남짓 앞두고 있다. 서울올림픽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 우리로서는 뜻밖에도, 평창올림픽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신중하고 인색한 듯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1988올림픽과 2018올림픽은 묘한 데자뷔가 있다.

우선 북핵을 둘러싸며 급증한 긴장과 한반도 주변국들의 갈등이 '많은 공포와 위협에 직면했던' 88년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불순하게 여기며 대회기간 동안의 잠정적인 평화를 확대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 또한 깊게 깔려 있다. 여기에 4년 전 러시아 소치올림픽은 도핑사건으로 얼룩졌다. 도핑의 악몽은 평창까지 이어져 러시아는 국가 출전이 불허된 상태다.

이제 우리는 사마란치의 '뒷말'을 떠올린다. 과연 평창이 '올림픽 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기적이 될 수 있을까. 88 뒤의 해빙처럼 국제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고,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 대회 이후의 '시간'만이 지니고 있을 터이지만, 그 대답은 지난 역사가 가르쳐주는 지혜 속에 이미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여러 측면에서 사상 최대 규모다. 15개 종목의 메달 수는 역대 최다인 306개(금·은·동)이며, 역시 최다인 92개국 2925명이 출전해 지난 소치 올림픽의 기록(88개국, 2858명)을 훌쩍 넘었다. 서울올림픽의 동서화합 제전을 방불케 하는 기념비적인 숫자다. 바야흐로 지구촌의 최대 식구들이 모인 이곳에서 일어날 일은 102개(설상 70개, 빙상 32개)의 금메달을 놓고 겨루는 희비와 감동 그 이상의 무엇이다.

이 대회는 우선 인류 스마트올림픽의 원년이라 할 만큼 ICT 기술들이 집결하는 잔치이다. 로봇, 사물인터넷, 5G서비스, 인공지능, 가상현실, 초고화질 영상 등 한국을 4차 산업혁명의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는 거대한 쇼윈도가 바로 평창일 수 있다. 또한, 21세기 국제질서의 대전환이 평창을 기점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혁신적 변모와 글로벌 위상을 가늠하는 중대한 시점과 지점이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 평창과 관련해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중국과, 약물 핸디캡에도 대규모의 선수단을 보낸 러시아의 의욕에는 향후 글로벌 지정학의 변수들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단서들이 있다. 가장 큰 것은 북핵 문제다. '올림픽 이펙트'는 북한이 집요하게 추구해온 핵주권 완성의 야망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돌아오는 것까지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평창대회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미국을 비롯한 주위의 제재 압박을 피하려는 술책일 뿐이라는 의심을 여전히 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대회 속에서의 소통과 깨달음을 통해 북한체제가 지녀온 고립감과 열등감을 극복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스스로 자초한 '불안'을 떨쳐낼 수 있게 된다면, 평창은 그들에게도 새로운 기적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새겨볼 것은 빚잔치의 문제다. IOC는 작년 7월 파리와 LA를 2024년과 2028년 올림픽 유치도시로 결정해 놓았다. 둘 중에 하나가 2024년을 맡으면 나머지 하나는 그 다음 올림픽을 맡는다는 식이다. 이런 이상한 결정을 내린 까닭은 어마어마한 비용 때문에 개최 희망도시들이 줄줄이 유치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1984년 LA올림픽 이후 모든 개최국들은 적자를 겪었다. 우리도 88 서울올림픽에서 어김없이 큰 빚을 냈다. 인프라 구축 등 사회간접자본의 효과를 봤기에 단순히 적자는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개최한 그리스는 이후 경제위기를 맞았고 국가 부도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2016년 올림픽을 치른 브라질 리우도 나라가 흔들렸다. 평창올림픽 또한 그런 위험에 직면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위대함'의 대가는 작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비용을 치르고도 건져야 할 위대한 가치와 미래가 있다면, 우린 최선을 다해 '가즈아 평창'을 외쳐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스크린도어에 씌어진 시 구절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의 '나 하나 꽃 피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