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대재덕로성(待才德老成)
2018-01-31 05:00
원주용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원(東園) 김귀영(金貴榮·1519∼1593)의 <동원선생문집(東園先生文集)>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은 30대의 젊은 나이로 한 나라의 문장을 대표하는 자리인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의 정2품(正二品) 으뜸 벼슬인 대제학(大提學)의 물망(物望)에 올랐다. 조정에서 신하들이 모여 추천하는 절차가 진행됐는데, 결과는 한 표가 부족해 추천을 못 하게 된 상황에 직면했다.
한음은 젊지만 뛰어난 문재(文才)와 높은 덕망으로 당시 사람들의 신망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에 크게 놀랐던 것이다. 이때 동원이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추천하지 않았소. 한음은 나이도 젊고 아직 벼슬도 낮은데, 여러분들보다 벼슬이 앞서서는 안 되지요. 재주와 덕이 더 성숙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중용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老夫爲此也 李某年少官卑 不宜先諸公 待才德老成 未晩也, 로부위차야 이모년소관비 불의선제공 대재덕로성 미만야).”
한음은 그의 말을 듣고 섭섭해하기보다 오히려 크게 기뻐했다. 그러자 당시 선비들은 둘 다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칭찬했다. 한음은 결국 31세에 대제학을 겸임하여 조선역사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 대제학에 올랐다.
요즘은 초스피드 시대이다. IT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며 4차 산업혁명에 맞추어 새로운 직업과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문명은 급변하고 있지만, 인간의 재주와 덕은 어떠한가? 급변할 수 없다.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공자(孔子) 말씀처럼 '빨리하려고 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법'(欲速不達, 욕속부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