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운명의 2018년, 올 테면 와 봐라!

2017-12-29 06:00

[사진=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


2017년은 아주 오랫동안 잊기 어려운 해가 될 것이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촛불시민혁명’ 때문이다. 정유년 첫날이 왔을 때만 해도 ‘뭐, 또 그렇고 그런 한 해가 가겠지’ 했었다. 그러나 서울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에서 일어난 촛불은 범람하는 강물이 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끌어내려 감옥에 보냈다. 17세기 후반 영국의 명예혁명이 무혈혁명이었다지만 사실은 수많은 전투와 사상자가 있었다. 촛불혁명은 그야말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완벽한 명예혁명이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애버트 재단은 이들 시민에게 ‘노벨평화상’ 같은 ‘인권상’을 시상했다.

‘근거 없는 풍문’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세 가지 때문에 놀란다고 한다. ‘G2 중국을 무시하는 것, 일본의 국력을 얕잡아 보는 것, 얼마나 전쟁위험이 높은 곳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란다. 이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진단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무시무시한 힘을 충분히 알고 있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은 분단상황의 처연함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밖으로 애써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무시’에는 ‘반드시 너희들을 극복하겠다’는 결연함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를 더 깊이 아는 외국인들은 그런 우리를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깜짝 놀라는 ‘한국인 네 가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에겐 ‘젓가락’이 있다. 중국, 일본, 베트남 어디에도 우리처럼 가느다란 젓가락을 쓰는 나라는 없다. 그 젓가락질을 못하면 말 그대로 굶어 죽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가르치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능수능란의 경지에 이른다. 외국인들은 우리가 그 젓가락으로 콩이나 깨를 집어 먹을 때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 젓가락을 쓸 줄 아는 것이 문화인의 자랑거리로 통한다는 풍문도 있다. 기능올림픽과 양궁, LPGA 골프를 석권하는 힘이 우리 젓가락의 섬세함에서 나온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의 젓가락은 다시금 ‘창의성’을 석권하기 위해 몸을 푸는 중이다.

둘째, 우리는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청양고추다. 더한 사람은 ‘고춧가루 서 말 먹고 뻘 속 삼십 리를 기어가기’도 한다. 타고난 끈기와 독한 승부근성, 자발적 근면성실을 따를 나라가 없다. 국제기구에서 같은 값이면 한국인을 직원으로 반긴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유사 이래 중국과 일본이 그렇게 우리를 괴롭혔지만 끝내 우리는 그들을 쫓아내고야 말았다. 우리들 가슴속에는 그와 같은 ‘자부심’이 활화산으로 용솟음치고 있다.

셋째, 우리에게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지게’가 있다. 가장 구하기 쉬운 나무로 간단하게 디자인된 우리의 지게는 모든 과학의 결정체다. 물리학, 수학, 인체역학은 물론 정신심리학이 지게 안에서 숨쉰다. 지게는 결코 힘으로 질 수 없다. 지게는 호흡으로 진다. 무게가 어깨, 허리, 다리, 팔, 작대기에 적절히 분산되는 균형과 호흡의 합일이 체중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앞으로 가게 한다. 좁은 길, 굽은 길,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걸어가며 작대기로 지겟다리를 치는 굿거리 장단에는 한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정신력의 비상(非常)이 숨어 있다.

넷째, 우리에겐 ‘붉은 악마’가 있다. 인구 13억, 1억3000만의 중국과 일본이 가보지 못한 월드컵 축구 4강에 인구 5000만의 우리가 가봤다. 그건 2017년 촛불이 채웠던 거리를 그대로 꽉 채웠던 레드 코리아(Red Korea) 붉은 셔츠 대열의 힘이 있어 가능했다. 지역, 종교, 이념, 성별, 나이, 기타 모든 것을 뛰어넘는 혼연일체가 붉은 악마의 표상이다. 붉은 악마가 압축경제성장, 최단기간 IMF 구제금융 위기 탈출, 촛불혁명 민주주의를 해냈다.

이제 해가 바뀌면 북한 핵 문제를 풀지 못한 한반도는 백척간두에 매달린 풍전등화의 시련이 닥칠 것이 불 보듯 하다. 그러나 젓가락의 기발성과 섬세함, 고춧가루 서 말을 함께 지게에 지고 길 나서는 ‘붉은 악마’가 있는 한 못된 운명은 길을 비킬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확신하고 또 확신하는 것이다.

그래그래, 어디 올 테면 와봐라. 2018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