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중소기업 천국은 이젠 ‘옛말’

2017-12-14 11:00
GDP 22% 매출 훙하이 등 대기업 속출
중소기업들, 대기업화하거나 도태 직면

[엄선영 대만통신원]

국내에서 대만은 ‘중소기업 천국’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제 더 이상은 중소기업 천국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경제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최근 대만 내부에서도 비슷한 견해가 전문가들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 우리에게 그동안 대만의 경제구조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이뤄진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과거 ‘아시아 4마리용’ 중에 국가의 경제발전 모델로 한국과 대만 두 나라가 서로 비교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대만인들의 유연하고 탄탄한 창업정신, 창업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중소기업하기 좋은 공정한 경쟁 구도 등이 회자되곤 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배려하는 정책이 가득하고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심하지 않다는 얘기도 많았다.

대만도 이제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로 바뀔 것이라는 지적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대만 중앙연구원사회학연구소의 학자 리쭝룽(李宗榮)·린쭝훙(林宗弘)은 ‘미처 이루지 못한 기적: 전환기 대만 경제와 사회’(올해 12월 출간)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책은 지난 20년간 대만경제가 기적에서 쇠락으로 변해가게 된 과정을 자세히 파헤치고 있다.

특히 대만경제가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냐는 질문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기업인 도요타의 직원은 약 44만명. 대만에서 가장 큰 기업인 훙하이(鴻海)의 직원은 130만명이다. 훙하이는 지난해 일본의 전자업체 샤프를 인수하기도 했다. 훙하이는 1974년 전자부품 생산업체로 출발, 2001년부터 위탁생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HP, 델, 레노버, 에이서, 아수스, 소니, 닌텐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화웨이 등 기업은 모두 훙하이의 고객사다.

이런 훙하이 그룹의 총매출액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2%이다. 또한 10대 기업의 기업당 평균 직원 수는 20만명으로, 훙하이 그룹을 제외한 평균은 10만명이다. 10대 기업의 집중도가 20년 전에는 25%였지만, 이제는 40%를 넘어서고 있다.

수출도 대기업이 잠식하고 있다. 1987년에는 중소기업이 수출생산액의 78%를 차지했으나, 2004~2005년에는 18%로 급감했다. 대기업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고, 중소기업은 대기업화하거나 도태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생존하기 어려워지면서 창업도 쇠퇴하고 있다.

문제는 500대 기업이 해외에서 고용 중인 직원 수는 250만명이지만, 대만 내에서 고용 중인 직원 수는 150만명에 불과하다는 데에 있다. 실업률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취업상태가 어렵다고 해서 소기업 창업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평균 3400만 대만달러(약 12억3590만원)가 필요하다.

저자들은 변해가는 대만 경제 구조 속 돌파구를 ‘부자세’를 늘리는 데에서 찾고 있다.

세수기반을 회복하지 못하면 국가차원에서의 투자도 어렵고, 기반을 마련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또 감세를 해봤자 자금이 해외로만 돌기 때문에 민생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대만의 조세부담률은 12%에 그친다. 우스갯소리로 국가가 벌어들이는 세수입이 적어서 신년맞이 불꽃놀이 규모가 해마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도 나돈다.

35개국의 통계가 모두 확정된 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조세부담률은 25.1%, 덴마크 49.5%, 미국 19.5% 한국 18%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