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문학 100년] 현대 중국의 선구적 여성주의자, 딩링

2017-12-14 17:48
사회주의 중국 여성상…'소피의 일기'와 '태양은 상간하를 비추고'를 통해 소개
남편 처형 후 혁명 문학 선택…문화대혁명 기간 수난 당하다 복권

김윤수 중국어문연구회 편집이사가 지난 6일 고려대학교 청산MK문학관에서 '현대 중국의 선구적 여성주의자, 딩링'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제공]

중국 근현대 최고의 여류작가로 불리는 딩링(丁玲)의 작품과 인생이 ‘중국 신문학 100년, 작가를 말하다’ 시리즈 강좌에서 집중 조명됐다.

김윤수 중국어문연구회 편집이사(중국 푸단대 문학박사)는 지난 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청산MK문화관에서 ‘현대 중국의 선구적 여성주의자, 딩링’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진융(金庸), 루쉰(魯迅) 등 중국 근현대 최고의 작가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이번 시리즈 강좌는 고려대 BK21플러스 중·일 언어·문화 교육·연구 사업단에서 주최하고,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중국어문연구회에서 주관했다.

김 이사는 “중국 근현대 최고의 여류작가 딩링을 통해 중국 여성의 정체성을 소개하고자 한다”며 이번 강좌에 의미를 부여했다.

딩링은 1904년 10월 12일 후난(湖南)성 린리(临澧)현의 지주 가정에서 태어났다. 작가로 등단한 이후 1928년 발표한 ‘소피의 일기’와 토지개혁에 참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948년 출간한 ‘태양은 상간하를 비추고’의 성공을 통해 딩은 중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로 자리 잡았다.

김 이사는 "'소피의 일기’는 여성의 연애관과 성애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당시 문단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고 소개했다.

한 젊은 여성의 노골적인 욕망과 여성에 대한 사회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지만 비난의 목소리도 뒤따랐다. 당시 많은 신여성들이 여성해방의 의미에서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실천했는데, 신지식을 갖춘 남성들에게도 여성의 적극적인 연애는 성적 문란, 도덕적 방탕으로 간주돼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딩링의 젊은 시절 사진과 그녀가 1928년에 출간한 작품 '소피의 일기' [사진=바이두]

김 이사는 “20세기 초반, 문명-야만의 구도 속에서 중국 여성은 무기력하고 낙후된 구 질서의 중국을 상징했다”며 “당시만 해도 교육을 받은 여성은 극소수였지만 민족과 국가의 위기를 해방하는 혁명과정에서 여성의 지위 또한 자연스레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딩은 열악했던 여성 인권을 향상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작가였다”면서 “당시 중국 여인들의 지위가 향상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마오쩌둥(毛澤東)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주창한 남녀 평등주의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마오 주석은 “사회주의 건설에는 남녀 구분이 없고 하늘의 절반은 여성이 떠받치고 있다”라는 남녀 평등주의 발언을 통해 여성의 혁명 참여를 독려했다.

김 이사는 “하지만 딩은 1931년 2월 공산당원인 남편 후예핀(胡也頻)이 국민당으로부터 처형당한 이후 연애라는 소재를 버리고 혁명을 다루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1942년 옌안(延安)에서 일어난 정풍운동(整風運動)에서 딩은 여성도 국가의 구성원임을 증명하기 위해 혁명에 참가했다”며 “딩은 당 선전부로 배속돼 영웅적 모범 이야기를 담은 보고문학을 다수 창작했다”고 부연했다.

이를 계기로 마오의 큰 신임을 얻은 딩은 혁명 운동의 주류가 되고자 노력했고, 그녀의 고군분투는 계급투쟁과 민족혁명이라는 과정 속에서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이후 딩은 토지개혁에 참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태양은 상간하를 비추고’라는 작품으로 1952년 스탈린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혁명 작가로서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딩의 인생 후반부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1942년 3월 세계여성의 날에 기고한 옌안 사회 내 여성문제를 담은 ‘3.8절 유감’이라는 글이 많은 지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이어 1955년에는 공산당과 당 간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모든 공직을 박탈당해 농촌으로 보내졌다. 특히 문화대혁명 기간(1966~1976년)에는 홍위병들에게 온갖 모욕과 구타를 당했다.

다행히 1979년 복권이 이뤄져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을 지내다가 1986년 향년 82세로 세상을 떴다. 김 이사는 “딩은 국민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혁명전사로 거듭나고자 했으나, 국가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의 ‘여성해방’만을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딩의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인생은 바로 중국 현대사의 모순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라며 “우리는 딩의 인생과 문학을 쭉 둘러보면 사회주의가 어떻게 중국의 신 여성상을 창조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