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문학 100년] 근현대 소설·신문학의 대부 량치차오
2017-11-09 16:55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이현복 교수 강의
서구 기술만으론 '부국강병' 한계…학교·신문 만들고 '변법자강운동'
보수파 쿠데타 실패 후 日 망명…망명 기간 글쓰기로 국민들 계몽
서구 기술만으론 '부국강병' 한계…학교·신문 만들고 '변법자강운동'
보수파 쿠데타 실패 후 日 망명…망명 기간 글쓰기로 국민들 계몽
중국 근현대사를 이야기할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량치차오(梁啓超)다. 그는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의 계몽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신소설과 신문학의 대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현복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난 3일 오후 6시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청산MK문화관에서 ‘량치차오, 근대로의 길목에서 소설을 발견하다’라는 주제로 진행한 강의에서 량의 저술활동이 당시 중국인들의 계몽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이번 강의는 고려대 BK21플러스 중·일 언어·문화 교육·연구 사업단에서 주최하고,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중국어문연구회에서 주관한 ‘중국 신문학 100년, 작가를 말하다’ 시리즈 강좌의 첫 번째다. 강의는 량치차오를 시작으로 진융(金庸), 루쉰(魯迅) 등 중국 근현대 최고의 작가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춰 내달 8일까지 총 8회에 걸쳐 진행된다.
이 교수는 “당시 청나라 말기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입으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가 스며드는 시기였다”며 량이 처했던 시대 상황을 소개했다.
이 교수는 “사회는 변화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을 농사를 짓던 청나라 백성들은 나라의 위기나 변화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며 문맹률이 높아 지식이나 정보의 소통이 단절된 사회였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은 지금도 ‘샤오캉(小康) 사회’, ‘중국몽(中國夢)’ 등 정치적인 이념을 내세워 국민들을 하나로 묶고 있다”며 문치의 전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청·일 전쟁 패배 직후, 량은 그의 스승인 캉유웨이(康有爲)와 함께 서구의 무기·기술만을 도입하는 양무운동(洋務運動)만으로는 부국강병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1898년 6월, 둘은 당시 황제였던 광서제(光緖帝)에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상소문을 올리고 무술변법을 주도했다. 당시 량의 나이는 25세에 불과했다.
무술변법의 주요 내용으로는 헌법제정, 국회개설, 과거제 개혁과 양식학교(洋式學校) 설립, 산업의 보호육성, 언론 활성화까지 당시로선 파격적이고 다양했다. 이어 주요도시에 학교를 설립하고, 신문을 발행해, 관료나 독서인 층을 대상으로 계몽·선전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이 운동은 서태후(西太后)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쿠데타로 좌절되고, 둘은 각각 일본과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이 교수는 “량은 서구식 체제를 받아들이자는 무술변법을 주도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다 중국에 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서구 열강들의 자본주의, 과학기술, 군국주의도 다 고대 중국의 사상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인식했다”고 말했다.
량은 일본으로 망명한 이후에도 중국인을 계몽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했다. 망명생활 동안 그는 ‘청의보(淸議報)’, ‘신민보(新民報)’ 등을 발행하고 지식을 전파하기 위한 저술활동을 왕성히 했다. 밤에는 학교에서 중국 역사를 가르치고 낮에는 5000자가 넘는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중국 신문학이 가는 길에 량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량이 저술과 계몽활동을 펼쳤던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전통시대에 글은 과거를 준비하던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글로 구성된 신문과 잡지를 통해 지식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이치를 깨닫고 이를 적극적으로 계몽에 이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량은 자신이 발행한 잡지와 신문에 새로운 이론을 담아 변화한 세상의 모습을 서술했다”며 “그는 신문과 소설을 통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연구하는 학습풍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소설과 신문은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고유 수단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강의에 앞서 홍윤기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소장은 “올해는 한·중 수교 25주년이자 중국 신문학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며 “이번 시리즈 강좌가 중국 문학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 신문학 성립 100주년 동안 중국인들이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