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중국의 窓] 왕후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17-12-07 11:20

[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중국의 움직임은 대부분 전략을 제시하고 방향을 설정한 후, 구체적인 단계별 정책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수렴된다.

이 과정에서 선례도 중요하지만, 어떤 인물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시진핑(習近平) 정부 집권 전반기 5년은 왕치산(王岐山)이 그런 존재였다.

왕치산의 움직임을 통해서 시진핑 체제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집권 2기를 시작한 지금 왕후닝(王滬寧)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상 시진핑 집권 2기 친정체제가 구축된 지금 왕후닝의 역할은 전략, 방향, 정책 등에서 왕치산의 역할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왕후닝은 이미 중앙서기처 서기뿐만 아니라, 중앙정신문명건설지도위원회 주임으로 시진핑과 함께 혹은 시진핑을 대신해 여러 회의와 대회에 참석하며 중국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11월 1일 열린 이른바 19대 정신을 학습하고 관철하는 중앙선전단 동원대회에 왕후닝이 참석해 발언을 했다. 선전 공작에 대한 일곱 가지 ‘분명하게 말하기(讲清楚)’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동원대회에서 왕후닝은 주제, 함의, 역사, 시대, 모순, 백년, 당 등 주로 시진핑 주석이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보고’에서 언급한 내용을 그대로 반복해서 강조했다. 동원대회에서 사실상 시진핑 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직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보인다. 전국 정신문명 표창대회에는 시진핑과 나란히 참석해 정신문명에 대한 주무 담당이 바로 자신임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진행된 중국 공산당과 세계 정당 고위급 대화에서도 시진핑과 나란히 자리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다.

지난 2일 중국 치공당(致公党) 제15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는 ‘화교(侨)’와 ‘해외(海)’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3일에는 저장(浙江)성 우전(乌镇)에서 개막된 제4회 세계인터넷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을 대신해 개막식 연설을 하고 ‘인터넷 공간 운명공동체’를 언급하기도 했다.

왕후닝이 주목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정치적 야심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를 수 있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정치적 욕망이 없이 최고지도자 그룹에 들어간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이상 집단지도체제의 구성원이 됐다는 점이다.

왕후닝이 이미 최고지도자 그룹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집단지도체제 성원으로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걸맞은 정치적 신호로 읽히게 됐다는 사실이다.

누구보다 왕후닝은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그리고 시진핑이라는 세 지도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경험은 지도자가 스탠스를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봐왔다는 것을 말한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매우 유능하게 현 국면을 끌고 갈 수 있는 정치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왕후닝의 발탁은 지방 통치 경험이 전혀 없는 간부도 특정 분야에서 노력하면 최고지도자 그룹에 진입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는 향후 제2, 제3의 왕후닝 같은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를 두고 중국 정치엘리트 충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이번 왕후닝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입성은 행정 급별에 따른 하급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부문에서 이뤄졌다.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국가주석을 제외하고 총리는 중앙 행정기관인 국무원을 관할한다. 행정 조직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어지는 급별에 따라 조직돼 있다.

그러나 왕후닝이 맡은 중앙정신문명건설지도위원회는 하위 행정조직을 거느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중앙조직만 존재하는 기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하는 경우의 수에서 적어도 하위 행정 급별 조직을 거느리지 않는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 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입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사상과 이론을 책임지는 분공에 입각한 사람이라면, 정치국 상무위원회 구성원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겼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왕후닝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입성이 나름대로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앞서 언급한 대로 집단지도체제의 주요 지도자로서의 역할이 발현돼야 한다.

적어도 명시적으로 집단지도체제를 부정하지 않거나 무력화시키지 않는 이상 중국의 중대한 정책결정이나 인선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이 바로 최고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참모로 걸어온 길이 아닌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어야 하는 과제가 왕후닝에게 놓여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기존 관행과 달리 새로운 관행의 수혜자로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입성했기 때문에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을 보여줘야 명분 축적에 도움이 된다. 왕후닝 같은 사람이 최고지도자 그룹에 진입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할 책임감도 생겼다.

왕후닝의 안착은 시진핑 주석에게도 새로운 관행 정착의 토대와 기반이 되고, 이것은 중장기적으로 시진핑 주석의 집권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왕후닝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