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의 과학과 문화] 과학도 교육도 게임처럼

2017-12-06 06:00

[사진=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회사 업무나 학생들의 공부가 마치 게임 같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늘 일해라, 공부해라 등 잔소리를 듣게 된다. ‘게임이 아닌 것에 게임적인 사고와 기법을 접목해 사용자들을 몰입시킬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은 결국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는 신조어와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게이미피케이션은 게임화를 뜻하며 문제해결, 지식전달, 행동이나 관심 유도 혹은 마케팅을 위해 게임의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게이미피케이션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속에 쑥 들어와 있다. 마케팅, 교육, 과학문화활동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가까운 예로는 윈도에 기본 게임으로 설치돼 있는 '프리셀(FreeCell)'을 들 수 있다. 자투리 시간에 심심풀이용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게임이지만 마우스 사용법을 익힐 수 있도록 개발된 게임이기도 한지라 게이미피케이션의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학프로젝트에 이 기법을 활용한 경우도 있다. '폴드 잇(fold it)'이라는 게임은 2008년 미국 워싱턴대에서 개발한 집단지성 체험게임인데, 3차원 퍼즐 게임형태로 만들어져 1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10년 동안 풀리지 않던 병균 단백질의 구조를 게임을 통해 규명했고, 연구결과는 네이처지에 정식 논문으로 게재되기도 했다.

'갤럭시 주(Galaxy Zoo)'라는 프로젝트도 유명하다. 로봇 망원경이 촬영한 성운 사진 100만장을 사이트에 공개하자 2년 반 동안 시민과학자 27만5000여명이 성운 사진을 분류했다. 어려운 과학에 게임의 요소를 도입해 게임을 하듯 재미있게 과학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사이언스레벨업’이라는 온라인 과학플랫폼을 만들어 기초과학부터 ICT 신기술까지 국민들이 알아야 할 과학 상식과 과학 콘텐츠를 게임을 즐기듯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퀴즈나 게임을 통해 과학 상식의 수준을 올릴 수 있는데, 과학비기너·과학주니어·과학시니어·과학마니아·과학마스터 등 레벨을 만들고 출석체크, 목표달성 미션 등 이벤트를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이달의 랭킹왕을 선정하는 등 철저히 게이미피케이션 방식으로 설계했다.

암스테르담 공항의 남성 화장실 변기에는 가짜 파리 그림이 붙어 있다. 단지 파리 그림 하나를 붙였을 뿐인데 바깥으로 튀어 나가는 소변 양을 80% 이상 줄였다고 한다. 소변을 보는 남성들은 가짜 파리를 조준해 사격하는 게임처럼 생각하며 재미있게 소변을 본다. 카페의 무료 쿠폰제도 게이미피케이션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커피나 차를 한 잔 구매할 때마다 쿠폰 카드에 도장을 찍어주고 열 개의 도장을 찍으면 한 잔 무료라는 미션을 준다. 이를 달성하면 바로 보상을 주는 방식이다. 과학축전이나 전시장에서도 일정한 코스를 돌며 미션을 수행하면 경품을 주는 방식으로 홍보마케팅을 한다. 학습사이트나 포털에서는 일정한 미션을 주고 미션을 달성할 때마다 메달을 주거나 등급을 높여주며 자주 접속하도록 재미 요소를 곁들여준다.

게임의 특성을 살펴보면 왜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우선 게임은 즉각적으로 결과가 나타나고 플레이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적절한 보상을 통해 동기부여가 이루어지고 다른 플레이어와 경쟁을 함으로써 승부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게임도 크게 보면 놀이의 일종이다. 요한 하위징아는 일찍이 '호모 루덴스'라는 고전적인 책을 통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희를 추구하는 존재이며, 놀이야말로 인간 문화와 문명의 기원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이 놀이를 좋아하는 것은 이런 유희적 본성 때문이다.

놀이는 자발적인 행위이고, 일상생활과는 구분되며 결과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또한 비생산적인 활동이며, 규칙이 있는 허구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현실의 각박함을 벗어나 허구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에 빠져들 수 있기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게임에 심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놀이나 게임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을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에 적용한 게이미피케이션은 매우 과학적인 방법이다. 과학이나 교육, 업무나 일상에서도 게임과 놀이의 원리나 특성을 접목한 게이미피케이션을 도입하면 세상이 더 재미있고 즐거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