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진칼럼] 신시대의 모순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2017-12-05 11:00

지난 10월 18~24일 시진핑(習近平) 집권 2기 최고지도부 인선을 마무리하고 향후 5년의 청사진을 그리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가 베이징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사진=신화통신]


지난 10월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신(新)시대'와 함께 주요 모순의 변경이 선언되었다. 사회주의에서 모순의 변화는 거의 모든 것의 변화를 의미한다.

"생산력의 발전이 임계에 도달하면 생산관계와의 모순이 폭발하고 체제가 전환된다. 이에 따라 인류사회는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로 발전했으며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의 기본 테제이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도 모순이 현상에 대한 진단과 미래의 목표를 결정했다. 마오쩌둥(毛澤東)도 『모순론』에서 주요 모순과 부차 모순을 구분하고 주요 모순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었다.

주요 모순의 중요성은 건국 이후 중국의 역사가 증명한다. 중국 공산당은 1956년 8차 당대회에서 노동자계급과 자산계급의 모순이 더 이상 주요 모순이 아니며 선진 공업국에 대한 인민의 요구와 중국이 낙후한 농업국이라는 현실 간의 모순이 주요 모순이라고 선언하고 '공업입국'의 목표를 제시했다.

뒤이어 마오쩌둥은 적대적 모순과 인민 내부의 모순을 구분했다. 인민 내부의 모순은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었으므로 백화제방·백가쟁명의 자유화 조치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공산당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자 이는 곧 반우파 투쟁으로 전환되었다. 앞서 제기된 주요 모순도 수정되어야 했다. 1958년 5월 중국 공산당은 8차 당대회를 다시 개최하여 무산계급과 자산계급의 투쟁을 다시 주요 모순으로 복귀시켰다. 이는 당대회 역사상 유일한 2차 회의였다.

개혁·개방도 마찬가지였다. 1981년 중국 공산당 11기 6중전회에서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대한 결의」를 통해 인민의 나날이 증가하는 물질문화에 대한 수요와 낙후한 사회생산간의 모순이 주요 모순이며 계급투쟁은 더 이상 주요 모순이 아니라고 선언함으로써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이번 19차 당대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민의 날로 증가하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등하고 불충분한 발전 간의 모순'도 표면상 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19차 당대회의 이전과의 차이점은 공산당이 주요 모순의 전환을 설명하기 위해 별로 애쓰지 않았다는 데 있다. 마오쩌둥 시기처럼 피 튀기는 정쟁이나 1981년 「결의」처럼 장황한 설명이나 논쟁도 없었다.

중국의 많은 이론가들은 주요 모순의 전환을 시진핑(習近平)이 추진하는 ‘공급 측 개혁’과 연결하여 체제가 아니라 경제정책 수준에서 해석하고 있다. 주요 모순이 과거에 가졌던 위상과 무게감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개혁·개방만큼 거대한 전환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는 주요 모순의 변동이 중국이 사회주의 초급단계나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추가 설명에서도 드러난다. ‘수요자’인 인민들에게 공산당이 발전과 부흥을 공급할테니 그 이상은 바라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한다.

19차 당대회의 주요 모순은 역사유물론의 흔적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과거처럼 그렇게 보이려는 변명이나 노력조차도 더해지지 않았다. 이상한 역설이지만 마르크스주의의 모순 개념에서 보자면 사회주의에서 더욱 멀어진 것이다.

정통에서 벗어났다고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발전과 부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수요자인 인민에게 나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다만 이러한 변화의 유일한 목표가 중국 공산당의 생존과 집권이라는 점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보다는 ‘공산당주의’라는 명칭이 더 적합해 보인다.
 
필자: 조형진 인천대학교(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