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디지털 시대의 무당과 역술인
2017-12-05 06:00
무당과 역술인이 계속 늘고 있다. 무당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와 역술인 단체인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두 단체 등록 회원은 각각 약 30만 명이고 비회원까지 포함하면 약 50만 명에 이른다. 100만여 명이 직업으로서 무당과 역술인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11년 전인 2006년 경신연합회 회원이 약 14만 명, 역술인연합회 회원이 약 20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년 새 약 1.5~2배 정도 늘었다. 어느 신문은 아직도 '미신'으로 치부되는 무당과 역술인의 숫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 좀 특별한 사회 현상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무당과 역술인이 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된다.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다. 기존 직업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평생 직업으로 무당과 역술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무당과 역술인은 직업 정년이 없다. 일종의 자영업이라서 본인의 신체·정신적 능력이 뒷받침되면 나이와 상관없이 평생 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자격증도 없고 일정 기간 배우거나 익히면 바로 창업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고령화 시대 실버 세대들이 안정적 노후를 위해 직업으로 선택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전문 학원들도 있어서 비교적 쉽게 공부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 IMF 외환 위기 때도 무당과 역술인이 늘었다고 한다.
다른 이유는 기성 종교에 대한 불신에서 찾는다. 흔히 고등 종교라 불리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이 종교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면서 기성 종교에 실망한 사람들이 새로운 솔루션을 찾게 되고 그 대안이 무속과 주역, 점 등이라는 것이다. 사실 무당과 역술인이 계속 늘고 있는 이유와 상관없이 기성 종교에서 보이는 일련의 퇴행적 행동들은 지속적인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안아주고 그들과 연대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대신 극우적 주장이나 부자들을 위한 메시지, 대형 신전을 신축하기 위한 헌금 강요 등이 계속되면서 기성 종교의 교세는 점점 위축되고 있다.
무당과 역술인이 늘고 있는 것은 경제·종교적 이유보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속성, 즉 가상공간의 확장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 가상공간은 우리가 실제 살고 있는 사회적 공간과 달리 누구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곳이다. 사회적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개별 정체성보다 사회적 규범이 더 중요하다. 정규직이고 동성애자가 아니고 건전한 종교가 있고, 이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선호된다. 성적 소수자, 장애인, ‘하등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무시당하거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은폐한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개인은 사회적 규범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개별 아이디로 존재한다. 가상공간에서 개인들은 개별 정체성에 의해 서로 연결된다. 자신들의 성적 취향, 이데올로기, 계급적 동질성, 단순한 취미 등에 기반한 모임을 만들고 서로 연대한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모임조차 영속적이지도 않고 규범적이지도 않다. 계속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없어지기도 한다. 또 일정 기간 확장될 때도 있고 축소되는 시기도 있다. 공간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도처에 무수히 존재한다. 공간과 공간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면서 무한히 확장되기도 한다. 사회적 공간에서 비주류로 낙인 찍힌 사람들이지만 가상공간에서는 여러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고등과 하등은 인위적 구분에 불과하다. 기존 사회적 규범이 설정한 ‘비체계적’ 종교에 관심 있던 사람들의 커밍아웃이 어느 시기까지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비단 무당과 역술인뿐만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모든 것들이 정상화될 때까지 계속 이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