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의 과학과 문화] 테크노밸리에 인문예술 감성 입히기
2017-10-25 05:00
첨단기술이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과학기술시대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첨단기술을 가진 기업들은 한곳에 모여서 테크노밸리라 불리는 혁신클러스터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모여 있는 미국 산타클라라의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이다. 프랑스에도 휴양도시 니스와 칸 근처에 '소피아앙티폴리스'라는 첨단과학기술단지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대덕특구와 판교테크노밸리가 있다. 이들 테크노밸리는 미래를 꿈꾸는 창의적인 기술인재들이 모이는 하이테크 도시다.
캐나다 토론토대 로트먼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저명한 석학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주역을 지식과 문화적 영감으로 무장한 ‘창조계급’이라 정의했다. 창조계급의 범주에는 과학자, 엔지니어, 건축가, 디자이너, 예술가 등 지식집약적 노동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망라돼 있다. 하이테크 도시에서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기발한 아이디어로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스타트업들 역시 모두 창조계급이다.
플로리다는 더 나아가 창조계급에게 중요한 것은 '문화'라고 강조했고 특정 지역·도시의 창의적인 문화에 주목했다. 창조적 성향의 사람들은 창조적인 장소를 선호하고 창조적인 거점도시로 모여든다는 것이다. 그들이 창조적 거점에서 찾는 것은 매력적인 경험, 다양성, 개방성, 창조적인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인정받는 기회 등이다.
창조계급은 자신이 살고 일하는 지역의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령 실리콘밸리는 혁신적인 연구중심 대학들이 몰려 있어 인재가 넘쳐나는 지역이기도 하지만 창업문화나 모험문화를 가지고 있다. 또한 텍사스 오스틴시는 북미도시 중에서 특허출원 실적이 둘째인 혁신도시인데, 이곳은 세계적인 음악축제도시로도 유명하다. 3월에는 SXSW, 10월에는 ACL이라는 음악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렇게 테크놀로지가 문화예술과 만날 때 창조계급의 창조성은 증폭될 수 있다.
우리나라 테크노밸리는 어떨까.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판교테크노밸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첨단기술과 문화예술이 함께하는 행복한 미래일터’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테크노밸리에 문화예술이 함께한다고 하니 궁금증을 유발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IT·BT·CT·NT 및 융합기술 중심의 첨단혁신클러스터, 스타트업 전 주기를 지원하는 오픈 플랫폼이라는 설명도 있고 입주기업 리스트도 나오지만, 어디에서도 문화예술의 향기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대문에 걸린 슬로건 ‘첨단기술과 함께하는 문화예술’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첨단기술과 문화예술은 정말 함께하기 힘든 것일까.
첨단기술시대이지만 하이테크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이터치가 필요하다. 예술은 테크놀로지를 필요로 하고, 테크놀로지는 인문학적 성찰과 예술적 감성을 필요로 한다. 테크노밸리에 예술혼과 인문학적 감성을 불어넣어야 진정한 창조도시가 될 수 있다. 대덕단지나 판교테크노밸리가 창조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기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창의성의 원천이 될 문화예술과 인문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