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의 즐거움]기러기를 듣다 - 구양수

2017-09-21 08:52

햇빛성의 물 얕은 마을에 처음 따라왔던 기러기
월나라 배를 좇아 짝을 따라 남쪽으로 날아왔네
강나루 들판엔 버들잎 노랗고 서리는 막 하얗게 될 무렵
새벽 4시 종소리가 나그네의 뒤숭숭한 잠을 깨우네
 
                                      - 구양수 '기러기를 듣다'



陽城淀里新來雁 양성정리신래안
趁伴南飛逐越船 진반남비축월선
野岸柳黃露正白 야안유황로정백
五更驚破客愁眠 오경경파객수면

                          - 自河北貶滁州初入汴河聞雁
   (하북에서 저주로 귀양가는 길, 변하로 막 들어서면서 기러기 소리를 듣고)
 

가을하늘 아래 (서울=연합뉴스)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를 보인 13일 오후 전북 진안군 용담댐 하류 부지에 코스모스가 활짝 펴 있다. 2017.9.13 [농촌진흥청 제공=연합뉴스] photo@yna.co.kr/2017-09-13 14:35:23/ <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옛사람들은 자나깨나 시를 읊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북적거리는 인파의 와중에서나 고적한 방황의 길에서나, 마음 속에 흐르는 낱말들을 골라 줄 없는 마음거문고(심금)를 퉁겼다. 하현우처럼 빼어난 가창력을 가지지 않아도 좋았다. 마음을 시행에 맡기고 감관을 풍광에 맡기고 가만히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송나라 구양수는 1045년 정치개혁 실패와 관련해 범중엄과 두연이 파임되었을 때 이들의 죄없음을 인종 황제에게 올렸다가 정적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는다. 정치적 적대자들은 그가 생질녀 강씨를 간통했다고 주장하며 역공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성추행 스캔들 쯤 되는 일인데, 이 때문에 구양수는 저주라는 곳으로 귀양을 간다. 이 시는 그 배 위에서 쓴 것이다.

기러기와 노랑 버들단풍, 그리고 서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초가을 쯤 되는 시기다. 그러나 캄캄한 강물 위에 하염없이 흐르는 배 위, 새벽 4시에 저런 사물들이 제대로 보일 리 없다. 시는 모두 시인의 상상 속에서 그려진 것이다. 기러기를 직접 본 것도 아니다. 다만 기러기 소리가 들릴 뿐이다. 한 마리, 그리고 다른 한 마리. 그는 어제 어느 성의 물가 마을에서 기러기 두 마리를 보았다. 기러기가 제 갈 곳을 두고 굳이 이 조그만 배를 따라 날아다닐 리 없지만, 시인에게는 어제 본 그 기러기와 오늘 새벽에 듣는 이 기러기가 같은 녀석들인 것만 같다. 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황제의 미움을 사서 쫓겨가는 외로운 존재에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저 새들이라도 나를 배웅하듯 혹은 호종하듯 따라나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뭇사람들은 등 돌렸으나, 기러기는 내 심정을 알아주어 이 밤하늘을 날며 끼룩거려 주는 것이 아닌가. 구양수의 귀는 자기의 고독과 억울한 항변을 함께 해주는 '지음(知音)'을 듣고 있는 셈이다.

캄캄하니 풍경이 보이지 않지만, 기러기 울음을 풍경으로 떠올리니 초가을의 아름다운 강변이 눈에 펼쳐진다. 버드나무 잎은 노오랗고, 그 위에 하얀 무서리가 내려 물낯에 서러운 제 그림자를 떨며 비추고 있을 것이다. 이 모습 또한 영락없는 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춥고 고독하며 꼼짝할 수 없는 신세. 그것을 꿈인듯 생시인듯 뒤숭숭하게 바라보는데 새벽4시의 종소리가 들려, 아직 미명(未明)의 삶을 깨워주는 것이다. 구양수도 보지 못한 풍경, 귀에 들린 기러기 소리 두 가닥, 그것을 우리가 눈 감고 귀 기울여 다시 듣는다. 이게 시가 아니랴. / 빈섬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