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쇼에서 볼법한 콘셉트카 아닐까?"

레인지로버 벨라(Velra)를 마주하고 든 첫인상이다.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양산차를 뛰어넘어 미래지향적인 자동차로 느껴졌다.

"별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네."

시승을 마무리하고 든 마지막 인상이다. 레인지로버 벨라의 뒷모습은 한껏 ‘힙업’이 된 리어범퍼가 장착된 SUV이지만, 실제 운전을 해보면 스포츠카 부럽지 않은 산뜻한 가속력으로 운전의 재미까지 잡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승차는 D300 V6 3.0ℓ 디젤 터보 모델로, 잠원 한강공원에서 인천 호텔 오라까지 왕복 총 137㎞ 구간을 시승했다.
 
◆ 미래지향적 실내외 디자인

레인지로버 벨라는 고급 SUV의 대명사인 랜드로버의 네 번째 모델이다. 벨라를 기점으로 차세대 레인지로버 라인업의 DNA를 가늠해볼 수 있다.

벨라는 ‘감추다’, ‘장막’이라는 뜻의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1969년 랜드로버가 단 26대만 제작한 레인지로버 프로토타입(시제작차)의 개발명이다.

우선 미래를 품은듯한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반듯하고 각졌던 이전 랜드로버 모델과 달리 곡선이 듬뿍 스며들어 날렵한 인상을 줬다.

스마트 키를 손에 쥐고 잠금을 해제하자 드라마틱한 전개가 이뤄졌다. 차체 표면에 감춰져 있던 문 손잡이가 스르륵 튀어나온 것. 문 손잡이에 숨겨진 버튼을 눌러도 마찬가지다. 차량이 잠기거나 시속 8㎞ 이상의 속도로 주행을 시작하면 문 손잡이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간다. 영하 20도에서도 얼음과 서리를 깨고 작동하며 돌출부 없는 매끈한 옆면으로 연비개선에도 영향을 준다는 게 랜드로버 측 설명이다.

실내 역시 미래지향적이다. 아날로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두 개의 10인치 고해상도 터치스크린과 12.3인치 패널의 계기판은 차량의 디지털화의 정점에 서있다. 차량 제어와 공조 기능 등 모두 두 개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이뤄진다. 실내 중앙부는 운전대와 센터페이아 이외에 공간을 둬 여백의 미를 살렸다. 새로운 기기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다만 이 같은 독특한 느낌 대신 모든 것을 터치로 작업해야하는 태블릿PC 형태의 패널의 실용성엔 의문부호가 붙는다.
 
◆ 스포츠카 DNA 품은 SUV

SUV는 시야확보 등이 좋아 운전에 미숙한 초보운전자나 여성들에게 주로 추천되는 자동차다. 벨라는 SUV의 강점과 함께 디젤모델임에도 불구하고 가솔린 세단의 정숙함을 갖춘 ‘팔방미인’이었다.

시동을 걸었을 때 엔진 소음도 상당히 조용했다. 시커멓던 디스플레이가 시동버튼을 누르자 화려한 그래픽이 드러난다. 제한속도까지 엑셀을 최대치로 밟고 급하게 가속하면서 고속도로를 질주해도 풍절음과 타이어 노면 소음은 물론 진동조차 미세하다.

곡선주로에서의 승차감은 탁월했다. 속도를 급하게 줄이지 않아도 차체가 든든하게 받쳐주는 느낌으로 여유롭게 운전할 수 있었다. 다만 가파른 곡선주로에서는 A필러가 두껍게 느껴져 시야 확보에 애를 먹기도 했다.

고속주행시 가속력은 덜컹거리는 느낌 없이 매끄럽다. 레인지로버 벨라의 디젤 3.0ℓ V6 트윈 터보차저 D300 엔진은 최고출력 300마력, 최대토크 71.4kg·m의 힘을 갖췄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6.5초에 불과하다.

덩치 큰 SUV이지만, 스포츠카의 DNA를 품고 있었다. 특히 정상주행 모드에서 스포츠주행 모드로 변경하면 미끄러지듯이 탁 치고 나가는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운전의 재미를 즐기고 싶은 3040대의 도심형 SUV로 제격이다.

레인지로버 벨라는 고급 SUV 시장을 타기팅하고 있다. 별수 없이 가격도 고급이다. D240 S부터 P380 R-다이내믹 SE까지 총 7개의 트림으로 출시되는 레인지로버 벨라의 가격은 9850만~1억1610만원. 성공한 사업가나 억대 연봉자들에게 최우선 순위로 고민될 선택지가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