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전에 1천억 후원 요청…평창올림픽 조직위 9400억 목표액 중 95% 채웠지만 공기업에 손벌려

2017-08-10 18:04
강원랜드에도 500억 이상 요청한 듯…가뜩이나 실적 안좋은 공기업 '전전긍긍'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후원을 언급하면서 공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실적도 좋지 않은데 적은 액수도 아닌 금액의 후원 요청을 받은 공기업은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잡은 후원 목표액은 9400억원으로, 이 중 95.1%(8940억원)를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런 상황에도 한 공기업에만 1000억원의 후원 요청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후원 목표액을 초과 달성, 부족한 운영예산을 메우겠다는 의미다.

이 공기업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무 등을 감안해 후원 요청에 대해 적극 검토 중이지만, 최근 실적 부진과 외부 투자자에 대한 인식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공기업 후원 요청··· 공기업 참여 확산되나

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G-200 평창을 준비하는 사람들' 행사에 참석, "공기업이 올림픽을 위해 마음을 열고 많은 후원을 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희범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이어 대통령까지 기업 및 공기업의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정부가 공기업 후원을 독려하는 것은 평창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최순실씨가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기업이 후원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자발적인 후원금이 '뇌물죄' 논란으로 확산되며 대기업 후원은 사라졌고, 정권 교체기의 공공기관장들도 지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 3월 확정된 평창올림픽 제4차 재정계획에 따르면 전체 운영예산상 수입은 2조5000억원, 지출은 2조8000억원이다. 부족액은 3000억원이다.

구체적으로 총 소요예산 2조8000억원은 △스폰서십 및 후원금 9400억원(34%) △국제올림픽위(IOC) 지원금 7400억원(27%) △입장권 판매 등 수입 1조1000억원(39%)으로 조성된다.

이 중 후원금만 보면 현재까지 8940억원을 모아 95.1%를 달성한 상태다. 현재까지 공공기관 후원은 한 군데도 없다.

◆ 후원 목표 부족액 460억원인데 한전 요청 금액만 1000억원

조직위는 후원 목표액 초과 달성을 기대하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부족분 3000억원을 후원으로 전부 메우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기관 후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으냐"며 "후원 액수를 채우는 것이 1차 목표이고 초과 달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공기업에 요청한 금액이 과도하다는 점이다. 현재 후원 목표 부족액은 460억원이다. 그러나 한국전력공사 한 곳에 요청한 금액만 1000억원에 달한다.

한전 관계자는 "조직위가 요청한 후원 금액은 1000억원"이라며 "후원 액수와 방법, 즉 공식 후원사로 갈 것인지 단순 기부할 것인지 등은 내부 검토 중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강원랜드도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진 않았지만 조직위가 공식파트너사(500억원 이상 후원)급 수준의 후원계약을 요청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조직위에서 요청한 금액이 있지만 밝히기 어렵다"며 "후원 액수, 후원 방법, 언제까지 결정해야 할지 등 결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한전과 강원랜드가 조직위의 요청 액수에 맞춰 후원을 확정할 경우, 후원 목표액을 채우고도 추가로 100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 실적 부진에 빠진 공기업, 외부 투자자 눈치도

거액의 후원금을 요청 받은 한전과 강원랜드는 답답한 심정이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데다, 상장회사여서 투자자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전은 2분기 연결 영업이익이 8465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68.7% 감소했다. 매출액은 12조9255억원으로 2.6% 줄었고, 당기순이익도 3589억원으로 79.7% 급감했다.

한전의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4년 4분기(8696억원) 이후 10분기 만에 처음이다.

강원랜드도 상황이 좋지 않다. 2분기 영업이익 1355억원, 매출액은 387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5.5%, 6.0% 감소한 수치다.

특히 이들 공기업은 외부 투자자가 존재하는 주식회사라는 점 때문에 후원 요청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전 관계자는 "공기업의 역할이 있으니 후원 요청을 적극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공기업이긴 하지만 외부 투자자가 있는 주식회사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 관계자는 "후원하는 금액이 보통 수준도 아니고, 후원 시 홍보효과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동계올림픽과 관련이 없어 기부 쪽으로 고민 중인 공기업도 있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조직위의 후원 요청이 있지만 금액과 방법에 대해 명시하진 않았다"며 "우리가 먼저 액수를 제시하기를 기다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적인 사업이고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무가 강조돼 참여하는 게 맞지 않으냐"며 "단지 마사회가 (평창에)사업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계스포츠와 관련 있는 것도 아니어서 후원보다 기부에 초점을 맞춰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