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중국의 窓] 북·중 관계는 왜 ‘혈맹’이 아닌가
2017-08-03 11:00
中 외교정책 근간은 ‘비동맹’으로
북·중은 ‘전통적 선린우호’ 관계
북·중은 ‘전통적 선린우호’ 관계
지난달 6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북한과 중국은 혈맹관계”라고 말했다고 한국 언론이 보도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중국 외교정책의 근간은 ‘비동맹’이고 지금도 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실제로 중국은 ‘전통적 선린우의’ 관계로 북한을 표현해 왔을 뿐이다.
이마저도 양국 관계가 균열되면서 ‘정상국가 대 정상국가’로 재정의하는 등 역사적 특수성을 지속적으로 상대화해왔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국이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중국이 적극 참여하면서 이러한 대북한 인식은 고착화됐다.
이런 점에서 만약 시 주석이 우리 정부 당국자의 설명대로 북·중 관계를 ‘혈맹’이라고 표현했다면 일대 ‘사건’이다. 아무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가 한·중 관계의 걸림돌이 된다고 해도, 북한이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상황에서 중국이 ‘혈맹’이라는 사문화된 표현을 써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외교부가 “과거 관계를 규정하는 차원에서 (혈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안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현 시점에서 우리의 대(對)중 외교정책의 메시지관리와 취약한 인프라를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적어도 17명의 중국지도자들이 북한을 방문했고 2000년 이후만 해도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 리커창(李克强), 장더장(張德江), 원자바오(溫家寶), 우방궈(吳邦國), 리창춘(李長春) 등 대부분 지도자들이 북한을 방문했다.
이때마다 양국은 ‘인민들의 선혈이 굳은(鲜血凝成)’ 관계라는 표현을 한결같이 사용했다. 2001년 장쩌민 주석이 평양을 방문할 당시 중조우의탑에 “선혈로 굳은 중조 우의는 만고에 푸르러라”는 화환을 바쳤고, 2008년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중국과 조선의 우의는 양국 인민이 선혈이 굳은’ 관계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중국과 북한이 혁명과 항일운동을 같이한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해 온 ‘인민’ 사이의 관계를 의미했다. 2015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김정은 제1서기를 면담할 때에도 예의 ‘선혈이 굳은’ 북·중 관계라고 말했다.
‘선혈이 굳은 관계’는 ‘피로 맺은 동맹’이라는 의미를 지닌 혈맹(血盟)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중국에서 혈맹의 사전적 의미는 “술의 맹세는 깨고 나면 사라지고, 물의 맹세는 마르면 그만이지만, 피를 나눈 맹세는 온 몸에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일생에 단 한 번만 하는 것”이다.
또한 국제정치의 동맹(alliance)도 “제3국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해 공동으로 방어하기 위한 양국 간 또는 다수국 간의 결합으로 개별적 안전보장의 한 형태”로 본다면 이러한 맥락을 북·중 관계에 적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혈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중국도 이를 확인해 주지 않았고 비공식적인 채널에서는 ‘혈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이른바 선혈이 굳은 관계’ 또는 ‘비록 선혈이 굳은 관계라고 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을 가능성이 있다.
요컨대 양국은 ‘선혈이 굳은 관계’이고 이런 관계는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에 대해 할 일을 다해왔고, 심지어 차마 하기 어려운 조치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 주석이 ‘말씀자료’에 있는 내용을 읽은 것이 아니라 회담과정에서 돌발적으로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즉,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보다 진전된’ 역할론을 요구하자, 중국이 그동안 책임을 다해왔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것이다.
양국정상이 얼굴을 붉힐 만한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만남 자제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은 양국 지도자들의 표정관리에서도 잘 드러났다.
이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과거 관계를 규정하는 차원에서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안다”면서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북·중 관계에서 ‘혈맹’이 지닌 민감한 외교적 의미를 포착하지 못한 우리 정부의 메시지 관리의 문제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을 상대로 한 이른바 ‘백 브리핑’에서 “시진핑 주석은 북·중 관계가 혈맹이며,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일차적 문제라면, ‘혈맹’이라는 단어의 민감성을 걸러내지 못한 메시지 관리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입장을 바꿔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능숙한 영어구사력을 지닌 외교관들이 이를 걸러내고 그 의미를 판독하기 위한 숙의과정을 거쳤을 것 아닌가.
이런 해프닝은 한국 언론이 한·중 정상회담을 비판적으로 봤지만, 중국 언론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일조했다.
차제에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에 대한 상관성(relevance)을 동시에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를 위한 대중국 인적 인프라는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 외교정책결정 과정에서 중국 변수는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