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칼럼] 불혹의 알파걸,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그녀에게

2017-07-25 21:38

[사진=비글램]

불혹을 앞두고있는 알파걸,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그녀에게.

90년대 이후, 디즈니 만화의 공주님들은 여리여리하고 갸날픈, 지켜줘야 할 캐릭터에서 자존감 높은 ‘아리엘’이나 ‘뮬란' 같은 캐릭터로 바뀌었다.

나는 그런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공부 좀 했다는 여학생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우리에게 ‘여자라고 못할 성역’이란 없었다.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은 중요 과목 뿐 아니라 예능과목들도 우수했다. 어디 그 뿐인가. 대인관계도 좋았고 심지어 외모도 가꿀 줄 알았다.

우리는 사회에서 말하는 ‘알파걸’이었고, 그 ‘알파걸’은 자신감이 넘쳤고 기세등등했다.

흔히 남자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한다는 뉘앙스가 부여되는 ‘알파걸’은 내 할말 다 하는 ‘쎈언니’와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그에 따라오는 자존감을 두둑이 가질 수 있었다.

그게 페미니즘이라는 사회적 수혜를 입은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으로부터 받는 기대감만큼이나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알파급'이었다는 게 함정!
남의 시선에 매우 민감했다. 그리고 우리는 특히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다. 공부를 잘했듯, 결혼까지 성공적으로 할 수 있길 바라는 그런 부모의 기대!

여기에 알파걸이 혼자 아무리 잘나도 넘을 수 없는 문턱이 있었으니 여자라면 자고로 전통적인 엄마, 아내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압박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이 결혼이 ‘내가 원하는 일인지’ 의문 조차 달지 않았다. 이 또한 알파걸 기질의 필자가 완수해야 하는 의무로 다가왔을 뿐.

일과 사랑에 빠져 몇 년을 보낸 후, 자리 잡혔다 싶어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뒤처져있었다. 아무리 비즈니스에서 성공했어도, 적당한 시기에 결혼하고 아이를 갖지 않은 알파걸은 제대로 어른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천덕꾸러기였을 뿐 ‘알파우먼’같은 개념은 없었다.

스스로도 불안했다. 뭔가 뒤쳐지고 있다는 자책과 조급함에 더 채찍질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몰아붙쳤다. 나도 어서 ‘정상’ 그룹에 편입하여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고지’를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말마다 선자리에 나가 소개팅을 시도했고, 마침내 부모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고 이정도면 내 남편감으로 내세울만한 조건의 남자와 서둘러 결혼을 준비했다. 살면서 맞춰가면 되고 ‘살다보면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조언만 귀에 들어왔다.

이즈음에서 예측 가능한 결론이 나오는데, 결국은 실패했다. 당연했다.
결혼생활이란 성적이나 성과가 아니지 않는가.

파혼으로 내 인생에 큰 흠집이 생겼다 느꼈고 가슴이 먹먹하고 어찌해야 할 지를 모른 채 인생 최대로 갈팡질팡한 시기를 보낼 즈음, 필자에게 다가온 매트릭스의 빨간약이 있었으니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이다.

처음에는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가 내심 영 불편했다. 조르바는 대화할 때 지금·순간·현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왠지 미래에 대한 대책은 없고 무대포처럼 보여 내 스타일 주인공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날 하룻밤 만에 그 책을 다 읽은 건 무슨 힘이었을까.
책을 덮는 순간 내가 지금 무엇을 놓치고있는지 깨달았다.

사실은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었던 것이다. 타인들의 수근거림은 찰나일 뿐이었는데. 계획적이고 모범적인 인생스케줄로 스스로 압박하는 것이야말로 날 힘들게 하는 원흉이었다. 오늘 내자신을 사랑하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남는 것임을. 조르바는 그걸 알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부담스럽게 지고 있던 부모의 기대도 내가 만들어낸 숙제였을 뿐, 부모님은 성인이 된 필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고 잘 극복하기를 조용히 바라고 계셨을 뿐이었다.

알파걸은 객관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조건을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때가 많다. 우리는 이것저것 너무 잘하려다 제일 중요한걸 놓치고 있다.

어쩌면 너무 단순하고 당연한 ‘인생은 한번 사는 삶이고. 온전한 내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걸 잊는다면 죽을 때까지 남의 기준에 맞춰 춤추다가 내 삶이 끝나버리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모성’ 이라든지 ‘아름다운 희생’같은 미사여구에 위안받으며 불행한 스스로를 만들고 떠안지 말자는 거다.

알파걸들이여,그리스인 조르바가 되자!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털어버리자.

겨울 날씨에서도 봄의 푸릇푸릇함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 길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있다는 표정을 느끼게 된다면 비로소 빨간약이 작동하는 것일 테니.

이 글을 읽을 수 많은 알파걸들과 나에게, 더없는 찬사와 존경을 보낸다. 당신과 내가 온전하고 찬란한 나의 삶을 살아내기를 기원한다.

/글=이지은 작가 #버터플라이 #청년기자단 #지켄트북스 #청년작가그룹 #지켄트 #비글램 #우먼멤버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