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리뷰] 뮤지컬 ‘시라노’ 원작 충실히 따랐지만…감동은 ‘글쎄’
2017-07-24 08:04
뮤지컬 ‘시라노’ 배우 류정한의 프로듀서 데뷔작
잔잔한 넘버 아쉬웠지만, 홍광호 열연 돋보여
잔잔한 넘버 아쉬웠지만, 홍광호 열연 돋보여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이 사내는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말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마치 시(詩) 속 한 구절과 같은 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누군가에겐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1대 100으로 싸워도 이길 수 있는 검술과 자신만만한 허세는 덤이다. 못 생긴 코가 유일한 콤플렉스다.
뮤지컬 ‘시라노’는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원작으로 한다. 이 작품은 영국의 ‘햄릿’ 스페인의 ‘돈키호테’와 비견되며 프랑스 ‘국민 문학’으로 대접받기도 했는데, 주인공인 시라노는 훗날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 달타냥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시라노’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자유롭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정당당한 사내인 동시에 시를 사랑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괴짜 검객 시라노의 이야기다. 프랑스 귀족 집안 출신 ‘에르퀼 사비니엥 드 시라노’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았다.
사실 ‘시라노’는 공연, 영화, 드라마,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로 제작된 바 있다. 뮤지컬로는 2009년 일본에서 뮤지컬 ‘지킬 앤드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대본·작사가 레슬리 브리커스 협업으로 초연됐다.
이번 한국 초연에서 화제가 된 데에는 베테랑 뮤지컬 배우 류정한이 출연과 함께 프로듀서로 프랭크 와일드혼과 호흡을 맞춘 것이 있다. 류정한의 뮤지컬 프로듀서 데뷔작인 셈인데, 시라노란 캐릭터의 매력과 극 전반의 주제 의식을 잘 전달했다는 점에선 합격점을 줄만하다.
원작의 특징과 분위기에 철저히 집중한 결과이지만 이로 인한 감동 역시 고전적인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훌륭했지만 넘버 자체를 놓고 보면 공연이 끝나고도 관객이 흥얼거릴만한 요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시라노 역을 맡은 배우 홍광호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앞서 출연했던 뮤지컬 ‘미스터 마우스’에서 서른 두 살이지만 일곱 살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인후’를 연기했던 것처럼 어딘가 모자라지만 반전 매력을 지닌 인물의 특성을 잘 끄집어냈다. 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가창력은 두 말 할 필요 없다.
‘시라노’는 화려한 겉모습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줄 아는 그 시대의 낭만을 잘 보여준다. 시적 감성과 편지를 통한 풋풋한 사랑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과거의 흔적은 아닐까. 공연은 10월8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