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일의 비바록] 북한 비핵화 가능하다고? 적화통일 외치는 북한 설득한다는 데...
2017-07-20 20:00
2020년까지 북한 비핵화(非核化).
정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남북관계 목표입니다. 국정운영 100대 과제에 포함된 이 대목은 듣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북핵을 동결해 완전한 핵폐기를 약속받겠다는 청사진이니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간 워싱턴 DC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미국의 응징 폭격 등 전쟁이 임박한 듯싶었는데 정반대의 메시지가 그득하니 더할 나위가 없을 터입니다.
정부는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비핵화를 이끌어 내겠다면서, 이를 위해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추가도발을 억제한다는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비해 합동참모본부에 있는 ‘핵 WMD 대응센터’를 ‘핵 WMD 작전본부’로 확대 개편하겠다는 겁니다. 동시에 6자회담 등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고 남북 간 직접 대화를 통해 초보적 신뢰를 구축하면서 협력기반을 심화시키겠다는 ‘방법론’도 제시했습니다.
연내에 평화체제 구축 로드맵을 마련하고, 북핵 완전 해결단계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것 등은 한반도에 해빙무드가 무르익어 가는 듯한 감마저 주고 있습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도 그렇습니다. 그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타이틀만으로도 국민들을 안도케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정말?”이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운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목표라는 게 이렇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만큼 희망적 내용을 담는 것은 당연하긴 합니다만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큰 탓일 겁니다. 북한, 중국과 어떤 내밀한 접촉과 성과가 있었는지 모르는 판에 섣부른 비관론이나 비판은 금물이겠으나 어디에서도 그런 징후가 감지된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22일은 중복(中伏)입니다. 복더위라는 말 그대로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통상 열흘 간격으로 있는 초·중·말복이지만 올해 말복은 20일 뒤니까 더위가 끝나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듯 싶습니다.
그런데 장밋빛으로 채색됐든 어떻든 정부 발표는 무더위를 견디는 데 많은 보탬이 될 듯합니다. 다수 국민들이 전쟁설에 겉으론 무심한 듯했으나 내심 긴장하지 않았을 리 없었지요.
당국은 이 점을 분명히 직시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기대를 갖고 따르면서도 유보적 입장 또한 간단치 않음을 말입니다. 아니 소위 꼴보수들은 북한에 대한 퍼주기를 넘어 ‘이상한’ 거래까지도 가능하다며 주시하고 있습니다. 밉다고 내칠 게 아니라 이들까지 믿고 따르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우리 당국은 그동안 흡수·인위적 통일을 하지 않겠다며 북한을 다독이는 데나 열중했습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지하면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인데, 정말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리라 기대하고 그런 제안을 하는지 의문입니다. 통일에 대한 당국자들의 안이한 시각도 우려의 크기를 더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은 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이 주체가 되는 통일 말입니다.
당국은 맹방인 미국이 우리를 신뢰하고 주도적 역할을 양해했다고 하지만 워싱턴 DC와 주류 언론의 분위기는 퍽 다른 듯합니다. 특히 대북 응징 가능성에 대해선 시각차가 큰 것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와 달리 아직도 대북(對北) 응징을 시간문제로 보는 분위기입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인용 수준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목에 칼끝을 들이대는 상대를 결코 묵과하지 않는 게 미국입니다. 이를 위해선 어떤 부담도 감내할 태세가 된 미국이고, 미국민들이지요. 중국도 이를 익히 알기에 북한 회유에 ‘성의’를 보였던 것입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관련 특집이 괜한 게 아닙니다. 미국 지도부가 고민하는 유일한 대목이 북한의 장사포 사거리에 있는 남한 2000만명이라는 것은 상식 아닌 상식이 됐습니다. 북한의 포격으로 수십만, 수백만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 때문에 주저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상태를 방치할 경우 미래엔 더 큰 위협이므로 ‘결국은 때린다’는 겁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물론 북한의 대응 타격으로 인한 인명피해 우려 때문에 협상으로 해결된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전자(前者)가 여전히 우세한 게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