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19대 전망①] 자오후지 전 中중앙당교 교수 “일원주의 역사 전통과 일맥상통”

2017-07-06 14:00

아주차이나 김봉철 기자 = 중국에게 있어 당대회는 당과 국가의 발전 방향과 비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난 2012년 중국공산당은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의 꿈’이라는 새로운 발전의 길을 제시했다.

올해로 창당 96주년을 맞는 중국공산당은 수많은 도전과 극복의 과정 속에 더욱 단단한 집권의 기반을 확립해 왔다.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와 중국문화원은 지난달 30일 ‘중국공산당 19대와 중국의 미래 발전’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하반기에 있을 19대를 앞두고 발표자들은 △역사(자오후지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정치(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경제(하남석 서울시립대 교수) △교육(천천 성균중국연구소 책임연구원) 등 각 분야별 이슈들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자오후지(趙虎吉)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사진=성균중국연구소 제공]


자오후지(趙虎吉)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역사 전통과의 일맥상통은 중국공산당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오 전 교수는 “중국공산당은 거의 모든 엘리트들을 8800여만명의 당원 대오로 흡수해 들이고 또 하나의 이념으로 전체 당원들을 동질화 시킨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중국은 5000년의 역사 가운데 2000년 동안 통일된 주권국가로서 중앙집권제 국가였다”면서 “일원 중심주의 가치관과 황제제도는 핵심 제도였고, 과거제와 관료제는 중국 정치 발전의 기반이자 중국 정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변수였다”고 설명했다.

자오 전 교수는 “이는 중국공산당의 국가통치 모델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고, 중국공산당은 이러한 역사적 전통의 연장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과거제도는 거의 모든 엘리트들을 왕권 안으로 흡수했고 하나의 유교로 전체 엘리트 집단을 동질화 시켰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일찍이 상당히 정비된 관료제를 확립했다. 동주(東周) 시대부터 계속된 전쟁으로 중국의 국가형성이 촉진됐고 진한 시대 통일제국의 형성은 관료제 국가의 형성을 의미했다.

계속된 전쟁으로 인한 구(舊)제도의 붕괴 및 그에 따른 제도의 개혁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관료제는 진한시대에 형성된 이후 중국 정치제도의 핵심의 하나가 됐다.

자오 전 교수는 “관료기구는 주나라의 혼란 속에서 부상하기 시작했지만, 아무런 계획성 없이 오로지 전쟁에 필요한 세금을 걷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부연했다.

과거제는 수당시대 시작되어 청 말기에 폐지됐다. 수당시대에 이르러 강력해진 왕권이 지방 호족과 문벌세력을 누르고 안정적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권력을 갖추게 되면서 과거제를 통한 대규모 관리 등용이 이뤄졌다.

이러한 중앙 왕권의 하향식 선발을 통해 왕권에 충성하는 유생들이 관료기구에 진출하게 됐다.

자오 전 교수는 “다시 말하자면 과거제, 관료제의 발전은 왕권의 강화와 궤를 같이 해왔으며 이는 일원 중심주의 가치 지향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의 반복으로 중국공산당을 설명했다. 자오 전 교수는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중국은 아편전쟁, 특히 형편없는 후진국이였던 일본에게 패배 당한 후 위기 극복을 위한 각종 주장들이 난무했다”면서 “신해혁명으로 청정부가 무너진 후 중국은 심각한 혼란에 빠들었다”고 했다.

무려 300여개의 서구식 정당들이 난무하고 군벌들 간의 혼전으로 나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 가운데 중국공산당이 탄생했던 것이다.

자오 전 교수는 “중국공산당이 다당제 실패 이후의 선택으로, 다당제로 인한 혼란과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을 했다”면서 “태학제도와 과거제도의 경험, 유교의 독점적 지위와 전체 엘리트 집단의 문화적 동질성 등 역사적 전통과 경험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