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5] 내 정보를 내 정보라 하지 못하고
2017-06-26 20:00
김 홍열 (초빙 논설위원, 정보사회학 박사)
유아 납치는 가장 악독하고 잔인한 범죄다. 판단 능력이 부족한 어린아이의 생명을 볼모로 부모에게 돈을 요구한다.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아이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경찰에 신고하면 바로 죽인다. 납치범의 이런 목소리가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면 누구라도 혼절하게 된다. 아이의 부모뿐만이 아니다. 당사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유아 납치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유아 납치를 소재로 다룬 영화들이 우리 뇌리에 끔찍하게 기억되는 이유다. 재생 불가능한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다. 생명은 그 아이의 것이다. 누구라도 남의 생명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범인들이 생명의 대가로 요구하는 것은 돈이다. 범인들에게는 남의 생명보다 자신의 돈이 더 소중하다. 대부분의 많은 범죄들이 돈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돈은 인간의 생명, 노동, 감정, 미래 등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상대화한다. 화폐가 절대 권력이 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화폐를 보유하려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자신의 노동을 화폐와 교환한다. 노동은 소비되고 삶은 조금씩 유지된다. 이런 패턴이 자본의 시대에 일반적 공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공식이 하나 등장했다. 자신의 소유가 분명한데 생성되는 순간 이미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돈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인질로 잡힐 수도 있다. 네트워크 시대의 정보가 그것이다.
인터넷나야나에 웹호스팅을 의뢰한 업체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다. 자신들이 오랜 기간 힘들게 만든 고객 데이터, 상품정보, 시장 현황, 소비자 성향 등에 관한 모든 데이터가 일시에 사라지게 됐다. 당장 주문을 받을 수도 없다.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다시 해야 된다. 전화로 주문받고 주문 내용을 일일이 기록해야 한다. 하루 이틀은 버틸 수 있겠지만 오랜 시간 계속되면 정상적 비즈니스가 불가능하다. 데이터는 언제 복원될지 모른다. 랜섬웨어를 무력화시킬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솔루션은 하나다. 해커의 요구에 응해야 된다. 인터넷나야나는 돈을 줬고, 업체들은 다시 자신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됐다.
이런 범죄 행위는 계속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보안에 취약한 영세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타고 들어오는 외부의 스파이웨어로부터 자신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망 분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이 많다. 망 분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중소 규모의 회사들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 말고 정보 납치 범죄가 반복될 것으로 보이는 더 큰 이유들이 있다. 하나는 해커들에게는 일반적 범죄 의식이 없다는 사실이다. 해커들은 자신의 행위가 사람들의 생명이나 존엄성 같은 대체 불가능한 것을 침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커들의 볼모는 디지털화된 데이터들이다. 이 데이터들은 항상 복제가 가능하다. 원본은 훼손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돌려줄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이 상대적으로 범죄 의식을 약화시킨다.
이제 우리는 데이터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다. 오지 깊숙한 곳에서 수도승처럼 사는 삶을 선택한다면 모르겠지만 일상적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매일매일 데이터로 호흡한다.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뱉듯이 데이터를 만들고 데이터를 소비한다.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이제 데이터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된 성형 전 얼굴에서부터 페이스북의 '좋아요', GPS에 노출된 위치 정보, CCTV에 찍힌 모습 등 모든 것이 가상공간에 흘러다니고 있다. 홍길동은 출가 전 아버지 홍 판서에게 극적으로 호부호형의 허락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상황에서도 내 정보를 내 정보라 하지 못한다.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순간 우리의 데이터는 가상공간에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