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이건 아니잖습니까] 과거를 묻지 마세요 (?)

2017-06-26 20:00

[사진=박종진]


참여정부 5년 내내 당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김병준 전 정책실장. 그런 그가 2006년 7월,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해 교육부총리에 취임했으나 불과 18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고야 말았다. 논문 표절과 중복 게재 논란으로 당시 전국교수노동조합이 워낙 거세게 들고 일어났던 탓이다. 교수노조는 성명서에서 "도덕적으로나 교육적으로 학생들의 교육을 지휘감독하고 교수들의 연구를 촉진시켜야 할 교육부총리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상태"라며 "우리나라 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루빨리 사퇴하는 길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아이러니다. 바로 11년 전 당시 김병준 교육부총리를 낙마시키는 데 일등 공신이었던 교수노조의 위원장으로 이 성명서를 직접 발표했던 장본인이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부총리로 지명한 김상곤 후보자다. 김 후보자의 1992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은 80군데 표절 의혹이 있고, 서울대는 이 중 44군데에 대해 출처 표시 없이 사용된 점을 인정했다. 두어 군데 정도라면 실수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무려 44군데나 된다는 것은 학자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자존심도 없어 보인다. 그보다 앞서 작성된 석사 논문은 자그마치 130곳이나 표절 의혹이 있는 상태다. 자기 눈의 대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았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당시 관행”이라는 정부 해명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렇다면 1990년대에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논문을 표절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스펙 쌓기용으로 학위를 땄던 일반인 중에는 있을지 몰라도, 교단에 설 학자 지망생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 이미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필자도 교수로부터 과제물을 제출할 때 출처 표기를 꼭 하라고 배웠던 시절이다. “표절은 도둑질”이라며 때마다 공세 고삐를 당겼던 민주당은 지금 어디로 갔나. 이쯤 되면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는 농담같지 않은 진담이 나올 만하다. 몰염치한 이중 잣대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김 후보자는 교육의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 후배 교수들에게나 학생들에게 도대체 뭐라고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김 후보자는 아직 말이 없다. 이건 아니다.

문제는 또 있다. 김 후보자는 ‘귀족학교’라는 비판을 받는 특목고‧자사고를 폐지하고 학교생활기록부종합전형을 확대할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학생부종합전형이야말로 ‘금수저 입시 전형’이라는 원성이 자자하다는 걸 모르는가. 사교육 절감은커녕, 오히려 고액 컨설팅과 같은 ‘재력+정보력’으로 무장한 든든한 부모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빵빵한 학생부를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실제로 학부모 10명 가운데 7명은 학종 전형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있는 집 자식’에게 더 유리한 수시와 학종 비중을 줄이고, 수능을 통한 정시 비중을 늘리라는 요구가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빗발치고 있다.

물론, 특목고‧자사고로 인해 일반고가 슬럼화되고 있다는 지적은 일부 일리 있다. 그러나 방향키를 엉뚱한 데로 돌렸다. 김 후보자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아예 폐지하고 수능과 고교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권 교육과 대학 서열화를 없애겠다고 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김 후보자가 지명되자마자 벌써부터 강남 부동산이 들썩이고 있다. 수능과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강남8학군이 다시 부활할 거라고 학원가에선 일찌감치 계산기를 두들겼다. 특목고‧자사고는 사는 동네와 상관없이 지원할 기회라도 있지만, 강남8학군은 절대로 아무나 못 가는 곳 아닌가.

마침 김상곤 후보자의 두 딸이 모두 대치동에 있는 모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고등학교는 특목고‧자사고 열풍 속에서도 건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강남8학군에 있다. 교육 관계자들은 그 배경을 ‘대치동 학원가 프리미엄’으로 꼽는다. 바꿔 말하면, 대치동이야말로 특목고‧자사고가 따로 필요 없는 동네란 뜻이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부모들이 대치동 학원의 힘을 빌려 아이들을 키우니 굳이 멀리 특목고‧외고를 지원해 가지 않더라도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곳에서 두 딸을 키운 김 후보자가 교육의 양극화를 말하고, 사교육 문제를 논하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정말 누구나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교육제도를 실현할 수 있을지, 그 진정성에 의구심마저 든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처럼 외고‧자사고를 폐지하고 교육의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공약해 당선된 진보교육감들 중에는 당황스럽게도 정작 자기 자녀를 외고에 보낸 이가 수두룩하다. 대치동에서 자녀를 키운 교육부 수장과 자녀를 외고에 보낸 교육감들이 ‘교육 개혁’을 말한들 씨가 먹힐 리 없다. 자칫하면 그나마 위태롭게 남아 있는 마지막 계층 이동의 사다리마저 댕강 부러지는 수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병준이 그러했듯, 문 대통령에게 김상곤은 각별한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한 달이란 시간을 끌면서 고민했을 것도 같다. 끝내 임명을 강행한다면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은 새 정부를 누가 막아설 수 있으랴. 그러나 이건 아니다. 좀 아프더라도 잘라낼 것은 잘라내야 이 정부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