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아침묵상] 신념信念

2017-06-25 20:00

[사진=배철현]

 

[사진=오바마]


배철현의 아침묵상

IV. 신념信念

1. 명사와 전치사
수련한 사람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동·서양 종교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후광을 두른 모습일까? 아니면 속세를 떠나 깊은 산 중에서 도를 닦는 도인처럼 가부좌를 틀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삼매경에 빠져야 할까? 우리는 이런 수련하는 인간을 일상에서 찾을 수 있을까? 수련하는 사람은 세속의 공간을 거룩한 공간으로 만든다. 사회가 규정한 전통과 관습이 그 앞에서는 쉽게 허물어진다. 그가 앉아 있는 곳이 가장 거룩한 공간이며 시간이다. 그에겐 자신만의 특별한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들어온 질문은 아마도 “너 커서 뭐가 될래?”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 질문은 대답이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무례하기까지 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다른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특정한 환경과 문화를 지닌 가정에 던져졌다. 왜 그렇게 태어나야 했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만일 내가 남미의 아마존 정글의 원주민이나 중동국가의 무슬림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그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특정한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내가 던져진 환경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위치를 심오하게 돌아보고 자신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한, 나는 환경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안주하는 것이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나의 미래는 예측할 수 있는 진부한 상태로 결정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오면,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자신이 스스로 자기 삶의 스승이 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내가 ‘무엇’을 추구하느냐가 아니라, 그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하는지가 더 중요한 시점이 온다. 그 ‘무엇’을 빛나게 하는 것은 ‘무엇’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대하는 나의 태도다. 어떤 사람의 꿈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다. ‘무엇’이라는 명사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꾸미는 ‘전치사’다. 영어 표현에서는 그 구분이 확실하다. ‘무엇’에 해당하는 ‘왓(what)'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왓’ 앞에 붙는 전치사들, 예를 들어 ‘포(for)'나 ‘바이(by)'와 같은 것들이다. 명사는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공유하는 것이지만, 한 개인의 카리스마는 그 사람만이 가지는 전치사에 달려 있다. 명사와 전치사가 하나가 되면, ‘왜’와 ‘어떻게’가 등장한다.

2.찰나
며칠 전 한 커피숍에 들렀다 책이 한 권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항상 커피를 테이크아웃 종이컵에 주문하고 바로 그 장소를 떠난다. 그러나 그 날만은 예외였다. 그 책이 나를 유혹하여 테이블에 앉게 하였다. 국내 한 출판사가 펴낸 역대 퓰리처 사진 상을 받는 작가들의 사진들에 관한 책이다. 나를 한순간에 몰입시키는 사진들 중에서도 한 사진이 나를 매료시켰다. 2008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당시 일리노이 주 민주당 상원의원인 버락 오바마의 사진이다. 오바마는 아마도 유세현장에서 막 유세를 시작하려 준비하는 모습인 것 같다. 혹은 자신의 대사가 적힌 텔레프롬프터를 보려고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바마는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 온몸이 비에 흠뻑 젖었다. 마이크가 앞에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검은색 잠바의 오른쪽 깃은 올라가 있다. 그는 미간을 약간 찌푸려 어디론가 몰입하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비들도 숨을 죽여 멈춘 것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다. 마치 빅뱅으로 우주가 만들어지기 전,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작은 점과 같은 찰나다.
그 찰나는 오바마의 과거가 주마간산처럼 흘러가고, 그의 미래가 선명하게 보여, 현재가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다. 오바마는 아프리카 케냐출신 아버지를 본 적도 없다. 미혼모인 어머니와 외조부의 손에서 자라 낯선 땅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려고 긴 여정을 떠날 참이다. 오바마는 불가능에 도전한다. 미국은 200여년 전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나라를 세우고, 아직도 인종차별이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대선에 출마하도록 만들었을까? 그것은 오바마의 보석같이 빛나는 ‘신념(信念)'이었다. 우리는 신념을 눈으로 볼 수 없어 무시한다.
오바마의 신념을 사진으로 포착한 한 기자가 있다. 그는 오바마 사진으로 2009년 퓰리처 사진상을 받는 대몬 윈터(1974년생)이다. 그는 기자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다. 윈터는 오바마라는 인물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오바마가 추구하는 이상을 포착하려 했다. 그는 오바마의 신념을 포착하였다. ‘신념’이란 자신만의 ‘델피 신전’에서 자신의 거룩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가지는 숭고한 가치다. 그 신념은 천상의 목소리보다, 천재적인 작곡가의 음악소리보다 거룩하고 감동적이다. 그 신념은 그 신념을 가진 사람을 변화시켜 서서히 자신이 원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마술이다.

3 신념信念
‘신념’은 서투른 자기 결심이나 아집이 아니다. 더욱이 나와 상관없는 타인이 만든 교리나 규범에 무비판적으로 동의하고 믿는 것도 아니다. 신념은 깊은 묵상과 수련을 통해 자신이 한 말(言)을 반드시 완수할 때, 그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인간(人間)이 되는 과정이다.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켜 완수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항상 침묵을 수련한다. 그가 자신이 운명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를 깨닫게 되면, 그것을 거침없이 말한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곧 그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내일로 미루거나 소홀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 임무는 나의 온 정성을 통해 지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미래에 이루어질 희망이 아니라, 바로 지금(只今) 순간에 이루어진다. 그는 ‘지금’이라는 종교를 신봉한다. 기원전 1세기 유대교 최고의 랍비였던 힐렐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하겠는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신념을 가진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한다. 윈터는 자신의 원대한 꿈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오바마는 거친 비바람이나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에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묵묵히 완수할 뿐이다.

4. 자기믿음
신념은 ‘자기믿음’이다. 사람들은 쉽게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이념이나 교리를 믿는다. 그 이유는 자신을 심오하게 들여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적이 없다. 밤하늘에 가끔 떨어지는 별똥처럼, 자신에게 감동적이며 천재적인 모습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것을 그냥 사라지도록 방치한다. 그런 모습이 중요하다고 배운 적이 없고, 포착하는 수련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를 주저한다. 오바마는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자신의 배경을 자기믿음을 통해 최고의 자산으로 변화시켰다. 케냐, 미혼모, 흑인, 정치초년병··· 이런 것들이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성취하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이것들은 오히려 자신의 위대함을 발견하는 굳건한 발판이 되었다.
‘신념’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빌리프(Belief)'다. ‘빌리프’는 종종 ‘믿음’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빌리프’는 ‘비(be)'라는 강세 접두어와 ‘소중하게 여기다,  삶의 우선순위에서 최우선으로 두다, 사랑하다’라는 의미를 지는 ‘리프-리베(lief-liebe)'의 합성어다. ‘빌리프’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믿거나 사상의 이데올로기에 동의하는 행위가 아니다. ‘빌리프’는 자신의 삶을 심오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위한 감동적이며 창의적인 임무를 깨닫고, 그것을 완수하는 것을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매진하는 삶이다. 나에게 유일하며 원대한 꿈은 무엇인가? 그 꿈에 나는 몰입하고 있는가? 나의 몰입은 내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가? 나는 나를 위한 신념을 구축한 적이 있는가?

그림:
유세하는 버락 오바마(2008년)
대몬 윈터 뉴욕타임스 기자가 찍어 2009년 퓰리처 사진상을 수상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