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흑역사㉞] SK케미칼, 비운의 '토종신약 1호'
2017-05-24 03:00
1999년 위암치료제 '선플라' 개발
제한적 치료범위로 매출 뒷걸음질
시장서 외면받으며 '실패 신약'으로
제한적 치료범위로 매출 뒷걸음질
시장서 외면받으며 '실패 신약'으로
아주경제 조현미 기자 = "100년 한국 제약사(史)를 다시 썼다." 1999년 7월 국산 신약 1호가 탄생하자 여기저기서 찬사가 나왔다. 주인공은 항암제 '선플라'다.
선플라는 SK케미칼이 개발한 위암 치료제다. 1990년 5월부터 9년간의 연구·개발(R&D)를 거쳐 만들어진 신약이다. 이 과정에 정부출연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 지원금 13억6000만원을 포함해 모두 81억원이 들어갔다.
임상시험 성적도 좋았다.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 특히 같은 계열의 기존 제품보다 부작용은 적고, 암을 치료하는 효과는 높았다.
선플라는 토종 기술로도 고부가가치를 지닌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세계적인 신약 1개의 이익은 자동차 300만대 수출액과 맞먹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국내 제약업계는 해외에서 개발한 신약을 들여오거나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국내에서 신약 후보물질부터 임상까지 신약 개발의 전 과정이 이뤄진 것도 의미가 깊었다. 연간 50억~70억원가량의 항암제 수입대체 효과도 기대됐다.
SK케미칼은 국내 승인과 함께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다. 제약 선진국인 미국·영국·프랑스 등의 현지 제약사와 수출을 추진했다.
하지만 10년 뒤 선플라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부진한 매출 탓이었다. 2001년 30억원을 기록했던 매출은 2002년에는 23억원으로 뒷걸음질쳤다. 이후 매출은 더 떨어졌다. 결국 회사는 2009년 '생산 중단' 결정을 내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마다 국산 신약 생산액 자료를 내놓는데, 선플라 매출액은 2009년 이후 '0원'을 기록한다.
선플라의 부진은 제품을 쓸 수 있는 치료 범위(적응증)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우리나라와 일본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위암 치료제 시장이 크지 않다. 치료 효과가 더 좋은 신약과 값싼 제네릭(복제약)이 속속 등장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SK케미칼은 적응증을 늘리기 위한 임상시험을 추가로 진행하며 명예 회복에 나섰다. 하지만 선플라는 결국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실패 토종신약'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