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고]비매품과 선거권
2017-04-26 14:07
모든상품에는 가격이 매겨져 있으나 어쩌다 사은품의 경우나 기념품, 출판물의 경우는「비매품」으로 증정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주는 사람의 정성과 받는 사람의 기쁨이 한데 버무러져 그 값을 시가로 매기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나는 투표권의 경우에도 이러한 비매품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값이 없는 대신에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와 명예가 담긴 것이 바로 선거권이며 1인1표가 절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민주국가의 핵을 이루고 있는 국민의 투표권은 그 가격(?)이 매우 유동적이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혈연·학연·지연에 얽매인 매표·몰표 경향은 불법·타락선거의 주류를 이루는 토양이 되었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이 되는 14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국민의 선거권이 서서히「비매품」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데는 대체로 공감할 것이다.
문제는 그래도 「인사」정도는 어떻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나면 차 한잔 마시고, 막걸리 한 잔 나누고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은 일상있는 일인데 후보자로부터 음료수 한병 얻어 마시고 집에 가는 택시비 정도 받는 것이야, 우리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이 아니냐고 생각 할 수 있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히 법과 양심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그리고 깨끗이 선거를 치르고자 하는 후보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수도 있다는 데 있다.
「그 정도 돈도 없으면 출마를 하지 말아야지」하는 비아냥이 유권자로서 대접받지 못했다는 서운함 때문에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높고 또 어느정도 이러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의 역사에서「매관매직」을 가장 부패의 극심한 예로 배워왔다.
대통령 등 선출직 공인이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는 하나 그들이 지닌 영향력은 사실상 막강하기 때문에 아직도 촌민들에게는 선출직 공인도 하나의 「벼슬」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현대판 벼슬자리를 판다면 누구든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펄쩍 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되었고 국정농단 조사로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설대담장소에서, 가두에서, 혹은 불법적인 가가호호 방문을 통해 선거철에만 유권자로서 정중히(?) 모시겠다는 후보자에게 표를 준다면 선거 이후에는 정작 유권자로서 대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봐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가 본의 아니게 화폐단위의 호칭에 있어서 몇백, 몇천억을 입에 자주 올리다보니 그야말로 몇만원은 껌값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수준이 어느정도 오르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의 어려운 일을 맡아서 하게되고 그들은 하루 일당 몇만원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도 마다하지 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내가 번 자기돈 몇만원이 무척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크린선거 캠페인은 물론 먼저 받지 않고 1년 365일 당당한 유권자 대접을 받겠다는 주민의 의식이 높아질 때 크린선거는 당연히 정착될 것이다.
선거기간 동안 후보자들이 벌이는「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기웃거리기 보다는 연설대담 토론과 공보 등 선거홍보물을 통해 공약이행 가능성·청렴성·도덕성·능력 등을 매섭게 저울질하는 바람직한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비매품 선거권이 뿌리내리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