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정세현 "美가 줄수 있는 '당근' 약속 받고 남북접촉 나서야 북핵 해결"

2017-04-17 08:38
차기 정부 "남남갈등 해소하는 작업, 정권 초기부터 해야"
南 주도권 잡으려면 先 남북관계 복원해야…문제는 '돈'이다"
"중국 역할론 주장은 책임회피다"
"통일전문가가 되기전 북한전문가 돼야…북한의 강약점 알아라"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대북 문제에 있어 액션을 취해야 할 책임과 권한은 남한 정부에 있다. 차기 정부는 남남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작업을 정권 초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4월 위기설' 등 최근 미국과 북한의 강대강 대치 국면과 더불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남북관계를 먼저 터야 북미간의 관계도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29~30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고 원광대학교 제 11대 총장, 앞서 박정희 정부 시절 국토통일원에 들어간 뒤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통일 비서관을 지낸 그를 지난 11일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11일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대북 문제에 있어 액션을 취해야 할 책임과 권한은 남한 정부에 있다"며 "차기 정부는 남남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작업을 정권 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최근 '4월 위기설' 부터 대선 때마다 도마에 오르는 '통일부 존폐 논란'까지 북한·통일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적인지 동포인지의 문제다. 한쪽만 보지 말고 북한의 두 얼굴을 다 봐야한다. 분명 군사적으로 적대관계에 있고 북한은 틈만 나면 남쪽을 위협해 통일과 관련된 주도권을 강화하려 한다. 이런 것을 경계하기 위해 국방부가 있는 것이다. 남북은 군사적 적대관계이기 때문에 국방부가 안보(peace keeping·피스키핑)을 분명히 해야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평화 정착(peace making·피스메이킹) 프로세스도 지속해야 한다.

통일의 편익이 크기 때문에라도 분단 상황 그대로 가지 않고 통일이 되는 게 바람직 하지 않나. 화해협력 관계를 심화발전 시켜 나가다 보면 평화정책착에 들어가는 돈이 훨씬 더 적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남북교류 협력이 활성화 되던 시기 북쪽이 남쪽을 상대로 해 위협적인 행동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상대적으로 전쟁공포 없이 살 수 있었고 바로 이것이 '피스메이킹의 효능' 아닌가.

국방부는 안보를 위해 100%노력하고 통일부는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통일부가 할 수 있는 평화정착 프로세스를 찾아야 한다. 군사적으로 북한과 협조적인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역할을 외교부가 해줘야 한다. 외교부는 북한의 군사력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외교를 해야 하는 동시에 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나라가 중국·소련이 아니었나. 80년대 말 우리가 이들 국가와 수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우리의 대북정책을 보면 '북한의 두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던 게 아닌가.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정책들 대부분은 '멸공통일', '승공통일', '반공통일', '(대북) 봉쇄정책 (Containment)' 등 이었다. 심지어 남북화해 협력으로 나가기 위한 '평화정착' 프로세스도 남북대화가 아닌 봉쇄정책을 기조로 하면서 안보를 확실히 하기 위한 일종의 감시기능으로서의 회담을 개최한 것이었다.

노태우 정부 들어 봉쇄정책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확한 대응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정책'을 잠시 추진했다. 당시 국제 정세의 변화의 흐름에 맞춰 지속적 경제발전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 등과 수교해 이들 국가를 남북에 대해 중립화시키려 했던 거다. 물론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총리급 회담 등의 이유도 있었다. '인게이지먼트 시대'였다.

김영상 정부 들어 다시 봉쇄정책 시대로 돌아간다. 이처럼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대북관이 중요한 거다. 대통령이 북한에 두 얼굴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인게이지먼트' 정책으로 가는데, 북한을 적으로 보면 봉쇄정책으로만 가게 되는 거다."

▲ 북한의 두 얼굴이 있다는 생각을 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는 문제가 없었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인게이지먼트 정책이었다. 인게이지먼트는 기본적으로 북한을 동포로만 보는 게 아니란 걸 분명히 해야한다. 북한에 두 얼굴이 있다는 걸 알고 인게이지먼트를 통해서 봉쇄정책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거다. 말하자면 '평화정착 프로세스'를 통해서 안보를 위한 경비를 줄여나가면서 조국을 통일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때 드러난 게 바로 남남갈등이었다."

그렇다면 남남갈등을 야기하는 '인게이지먼트'정책으로 남북관계가 개선 되도 의미 없는게 아닌가.

"김대중 정부가 잘못 해서가 아니다. 노태우 정부 때 잠시 '인게이지먼트' 정책을 취했지만 다시 봉쇄정책으로 돌아오면서 남남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없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들어 본격적 화해협력 시대가 오니까 그 동안 통일이란 말이 담론수준이었던 말이 땅 바닥위로 내려와 현실적 문제가 됐다. 남북관계가 정말 활성화 되면 반공 가지고는 못 먹고 살게 되는 사람들 때문에 남남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 '퍼주고 뺨맞기', '북한에 끌려다니기' 등 온갖 비난이 난무했고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에 공감했다."

차기 정부가 대북정책에 있어서 꼭 견지해야 할 점으로 어떤 게 있을까.

"나는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차관이었다. 직접 정책을 국민에 설명하고 다니기는 어려웠다.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장관으로 일을 하면서 김대중 정부 때 생긴 남남갈등을 실감했다. 애초 '직접 언론사 간부들이나 여론 지도층에 설명을 했더라면 오해를 풀 수 있었는데 그걸 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일이 있을때마다 대통령 허가 받을 것도 없이 바로 지방으로 가 민주평통자문회의 조직을 활용해 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그렇게 열린 통일포럼이 1년동안 25번 이었다. 새 정부는 남남갈등 해소하는 작업을 처음부터 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지 만 먼저 남북관계 회복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남남갈등 해소도 그렇지만 당장 북한의 위협 속에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을 끌어내기가 쉬울까.

"북한이 우리말을 듣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결국 그건 간단하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주는 것이다. 독일도 그리했다. 사실상 (독일 통일은) 돈 주고 한 것 아닌가. 독일의 경우, 20년동안 1044억 도이치마르크(약 66조2360억원)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갔다. 달러로 환산하면 약 580억 달러다. 이는 1년에 29억 달러씩 동쪽으로 간 것인데, 지난해 2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1995년 김영삼 정부때부터 현재까지 남한에서 북한으로 30억달러나 보냈다고 한 발언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현금은 8억 달러 정도 밖에 안되고 22억달러는 현물로 갔다. 30억 달러는 서독이 동독에 지원한 1년치 정도 밖에 안된다. 우리 20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 1년에 1억5000만 달러 정도밖에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현금과 현물이 가는 그 과정에서 북한의 눈초리가 달라졌었다. 그 액수가 더 커졌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북한 문제에 미국과 중국이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역할론과 더불어 우리의 역할론 문제도 항상 비난받는 부분 아닌가.

"남한이 북미관계의 조정자 역할을 해서 핵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해봐야 지속적으로 반발만 나온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안 하기 때문이다. 분단체제에서 구축된 기득권을 포기 못하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우리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북한의 선(先) 행동론'이 아니라 '남한의 선(先) 행동'이 그것이다.

북핵문제를 풀려면 남한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비핵개방 3000 등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북한 선 행동'으로 끌려가지 말고 우리가 먼저 북한과 관계 복원하고 대화를 해야한다. 이때 '중국 역할론'을 내세우지 말아야한다. 오히려 미국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때 남한이 미국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한이 회담에 나올 수 있게 설득을 해 보겠다'라며 미국이 직접적 약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북한에 희망만이라도 보여줄 수 있게 남한이 역할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남한은 중국과 협조해 북한이 그 '당근'때문이라도 회담에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당근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북한의 선행동만 요구하고 있지 않나."

▲ '중국 역할론'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그건 책임 회피다. 중국이 무슨 하청업자인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는데 있어 중국이 줄 수 있는 보상은 없다. 미국이 다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미국의 약속은 하나도 없이 중국에게 (북한) 팔을 비틀어 나오란 것인데, 이게 전략인가 정책인가.

미국에게 북한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북한에 대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얘기를 하는데 그건 말 폭탄일 뿐이지 구체적 액션플랜이 없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가 대북정책을 조밀하게 짜서 그에 따른 성과를 알려 따라오게 해야 한다. 애초 그들은 그다지 북한문제에 관심이 없다. 미국도 우리하기 나름이고, 북한도 우리하기 나름이다. 한국 정부가 대북정책을 잘 세워서 미국을 설득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내내 액션을 취해야 될 책임과 권한은 남한 정부에 있다고 했다.

"미국이 우리에게 (북한문제에 대한 해결) 권한을 줘야한다. 미북간 접촉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지 않는 이상 우리의 입지는 없어지게 된다. 처음부터 정부가 미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당근'을 어느 정도 약속받고 미국으로부터 권한을 넘겨받아 남북 접촉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김정은에 특사를 보내는 등 어떤 액션을 취해 '북미간 대화의 장으로 나오면 뭔가 얻을 게 있다'는 북한에 희망 줘 우리의 입지를 우리 스스로 찾아야한다.

지금처럼 중국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선 늘 그래왔듯 북한은 남한 정부를 대화의 틀에서 배제시킬 것이다. 한반도 문제인 우리의 문제에서 우리가 배제되는 것, 2003년 노무현 정권교체기 중국이 주도하는 북미중 3자회담이 바로 그것 아닌가. 남한과 중국 중 누가 먼저 움직이냐에 따라 (당사국 중) '원 오브 뎀( one of them· 그들 중 한 사람)' 될 수도, 우리의 운명 결정 순간에 창밖에 있을 수도 있다."


▶정세현(72) 전 통일부 장관은...

박정희 정부 시절 국토통일원(현 통일부)에 들어갔다. 김영삼 시절 대통령비서실 통일 비서관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원광대학교 제11대 총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1945년 일본령 만주국 싼장 성 자무쓰 시에서 태어난 '해방둥이'다.

태어난 지 두 달 뒤 해방이 됐고, 만주와 한반도를 관통하는 40일간의 여정을 거쳐 아버지의 고향인 전주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에 관심이 많아, 1973년 중국 고대 정치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 이용희 교수가 국토통일원 장관이 돼 뽑은 공산권 연구관 중 한 명으로 통일원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통일 관련 업부를 시작하게 됐다.

1982년 모택동 시대에 중국 외교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직업적 전공은 남북관계이지만 학문적 전공은 중국외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