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미학]탱글탱글 피굴로 건강 챙기고 바지락해장국으로 속 달래볼까

2017-03-20 00:00

아주경제 기수정 기자 =겨우내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는 데는 제철 보양식이 제격일 듯했다.

"다른 건 몰라도 맛을 가지고는 전라도와 견줄 곳은 없다."는 어르신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예로부터 전라도 음식은 '맛'에 있어서는 전국 어느 지방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간단히 짐을 챙겨 전라남도 고흥으로 향했다. 역시 고흥은 '맛'있는 음식이 즐비한 고장이었다. 

오동통한 굴과 뽀얀 국물이 어우러져 고소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내는 피굴, 바삭하게 구워 밥도둑이 따로 없는 서대, 야들야들 부드럽게 씹히는 주꾸미, 깊은 맛이 일품인 바지락탕까지….무작정 떠난 고흥에서 별미 중의 별미를 맛보고 돌아왔다.

◆뽀얀 국물·오동통한 굴의 조화…낯선 이름 '피굴'이여
 

해주식당의 한정식 차림. 고흥에서 나는 다양한 해산물의 향연이 펼쳐지는 훌륭한 한 상이다.[사진=기수정 기자]

고흥의 한정식집 해주식당에 도착해 예약한 방의 문을 여는 순간 눈은 놀란 아이처럼 커지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충 훑어도 몇십가지는 족히 돼 보이는 밑반찬이 널찍한 한 상에 가득 차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낯선 음식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감칠맛이 돌면서 뒷맛이 깔끔한 고흥의 별미 '피굴'[사진=기수정 기자]

뽀얀 국물 그 위로 떠오른 탱글탱글한 굴 알맹이들이다. 바지락탕이나 홍합탕 같은 굴탕 정도로 여기며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다.

앗, 시원한 냉국같다. 감칠맛이 돌면서 뒷맛이 깔끔하다. 마침 들어오는 주인장에게 "탕이 원래 이렇게 찬가요?"라고 물었다.

"그거 피굴이요. 고흥 향토음식이랑께." 피굴? 피골이 상접하단 얘기(살면서 그런 소리를 들어보진 못했다.)는 아닐 듯했다.

피굴은 껍질이 있는 굴국이라는 뜻으로, 겨울부터 초봄까지 고흥 사람들이 주로 먹는 별미다. 

피굴은 굴이 흔하고 맛있는 고흥이 아니면 탄생할 수 없었을 음식일 것이다.

대부분 '굴'하면 통영을 떠올리겠지만 고흥 '남성 굴'은 통영 굴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고흥이 오염되지 않은 지역이라 굴의 품질도 더 뛰어난 덕이다.

굴을 껍데기째 삶아 찌꺼기를 가라앉힌 후 맑은 물만 따라내 식힌다. 그리고 삶아낸 굴살을 넣고 다진 실파와 김가루, 참기름, 깨소금을 약간 올리면 원기충전에 제격인 하나의 명품 요리로 재탄생한다 .

피굴을 비롯해 팥을 넣은 낙지죽, 서대구이, 육사시미, 삼치회 등 수십 가지 고흥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해주식당의 한정식 한 상 차림 가격은 1인 3만원. 

◆바지락의 깊은 맛…속 달래는 데 최고 '바지락 해장국'
 

담백하면서도 깊은 국물 맛도 좋지만 쫄깃한 식감이 제격인 길손식당의 바지락 해장국[사진=기수정 기자]


다음 날 아침 일찍 찾은 곳은 길손식당. 전날 고된 일정의 피로를 한 번에 날릴 아침밥상이 될 것이란 지인의 말에 "어제 먹은 저녁도 채 소화되지 않은 것 같다."며 들어섰다. 
 
1인분 8000원 가격의 바지락해장국을 주문하고 조금 지나니 어제 먹은 한정식을 1/3로 축소해놓은 듯한 밥상이 차려지기 시작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갈치를 구워 위에 양념을 얹은 갈치구이, 낙지처럼 굵은 주꾸미초무침 등 8000원이라고는 도통 믿을 수 없는 밥상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지더니 어느새 젓가락은 반찬을 향하고 있다.
 

8000원짜리 바지락 해장국을 시켰는데 갈치조림이 밑반찬으로 등장한다. [사진=기수정 기자]

바지락 역시 손꼽히는 고흥 봄철 보양식이다.

고흥산 바지락은 특히 패각(貝殼, 조개껍데기)이 크고 조갯살이 알차다. 조갯살도 이맘때 가장 오동통한 자태를 드러낸다.
 

길손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주꾸미를 새콤달콤 무쳐낸 주꾸미무침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주로 맑은 탕으로 끓여 술안주로 먹기도 하지만 한 끼 식사로 더 훌륭하다.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많은 종류의 반찬은 물론 국물, 안에 담긴 조갯살까지 싹싹 비울 정도로 맛이 훌륭한 아침임에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