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특검 연장 거부...역사(歷史)가 기억한다
2017-02-27 13:44
대한민국호가 난파선에 비유되며 거센 파고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오래됐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대한민국 호는 갈 곳 몰라 허둥대기 시작했다. 선장은 항로를 제시하는 대신 무기력하게 선장실로 숨어버렸다.
그 와중에 촛불민심이 불붙기 시작하고, 국회가 탄핵에 나서고, 어느 틈엔가 선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태극기 집회로 대한민국호는 이제 두 동강이 나게 생겼다. 사태의 본질은 민간인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이다.
대한민국호가 파고를 넘어서 순항을 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대한 선고 이후가 더 중요하다. 배가 흔들린다고 구멍이 난 곳을 수리하지 말고 그냥 가자는 주장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배는 결국 가라앉게 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7일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를 선택했다.
무엇이 두려운가? 불발에 그친 대통령의 대면조사인가? 추가로 밝혀질지 모르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례인가? 향후 전개될 예정인 삼성 외 다른 재벌기업에 대한 추가 수사 때문인가? 황 권한대행이 야당과 촛불민심의 거센 요구였던 특검 연장을 거부한 이유가 정말, 궁금해졌다.
황 권한대행은 ‘오랜 고심 끝에 특검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황 권한대행은 특검연장 불승인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지난 4개월 동안 매 주말 도심 한가운데에서 대규모 찬반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정치권도 특검연장이나 특검법 개정 등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황 권한대행은 그러면서 “헌재 결정에 따라 대통령 선거가 조기에 행해질 수도 있고, 그럴 경우 특검수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정치권 우려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치적인 고려를 숨기지 않았다.
좌고우면(左顧右眄) 끝에 결국 국민의 15%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결국 특검을 불승인한 것이라는 설명은 안쓰럽다. 정세균 국회의장실에서 특검 연장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70%가 특검 연장에 찬성했다. 70%의 여론을 등지고 15%에 기대는 심리는 무엇일까?
주변 정치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부지불식(不知不識) 중에 탄핵 인용을 전제로 한 논리를 펴는 경우를 많다. 그만큼 헌재의 탄핵 인용은 이미 정치인들의 무의식속에 내재돼 있는 셈이다. 아무리 태극기집회의 규모를 확대한다고 해도 국민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음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황 권한대행이 특검 연장을 거부하자 야권은 일제히 황 권한대행을 성토하고 나서며 탄핵도 불사할 태세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동시에 탄핵 심판정에 세우는 드문 장면이 연출될 지도 모른다.
야권이 탄핵까지 들고 나선 것은 그만큼의 국민적인 지지를 믿고 있는 까닭이다. 어떤 정치적인 수사(修辭)도 필요하지 않다. 촛불의 명령으로 상징되는 국민적 여론은 ‘특검 연장’을 통해 그동안 밝혀내지 못한 각종 의혹들을 낱낱이 까발려 다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법질서 체계에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을 시작으로 법꾸라지로 불리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현직 장관들의 잇따른 구속은 박영수 특검팀이기에 가능했다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을 새로운 특검이 하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지금은 대충 덮고 넘어간 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국민화합과 통합 차원에서 대충 얼버무리겠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가 그런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특검연장을 바라는 국민들은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얼룩진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
국민들의 바람이 꺾였다. 봄날이 온 듯한데, 돌 밑에 숨어있는 삭풍이 불어 꽃봉오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봄 같지 않다.
벚꽃 대선이 아닐망정 조기대선이라도 보고 싶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