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 대통령은 역사와 대면(對面)하라

2017-02-21 00:01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덧칠된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 교과서에 오롯이 남아있는 독재자 대신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진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해야 한다. 새마을운동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로 수출(?)되는 갚진 것이라는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진통이 따르더라도 국정교과서를 시행을 강행해야 했다. 교과서에 실린 역사를 누가 부정할 것인가. 그렇게 박정희 시대를 새로 쓰고 싶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추측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3년차가 시작되는 해인 2015년 초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향후 박근혜 정부의 나아갈 길을 물었다. 그 당시까지도 창조경제의 개념 논란이 한창일 때였다. ‘역사와 대화를 할 것이다. 아버지의 시대를 다시 쓸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 자신에 대한 역사에 새로 쓸 지는 두고 봐야겠다’라는 답을 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전자를 선택했다. 자신을 위한 역사-이는 국민을 향해 나아가는 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보다는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역사쓰기에 매달렸다. 그 배경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에 유추해본다면 최순실씨와의 관계가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최 씨로서는 박정희의 역사는 선친인 최태민씨에 대한 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에 집착이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농단은 이것이 시발점이었다.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 역사적 평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들도 그런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문제는 많은 대통령들이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 즉 오해를 기초로 했기 때문에 모두 역사로부터 외면당했다. 

박 대통령이 잘못 선택한 ‘역사와의 대화’는 곧바로 국가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졌다. 개인의 욕심이 시스템을 붕괴시킨 것을 두고 ‘국정농단’이라고 적고, ‘나라망치기’라고 사람들은 읽게 되었다.

최근 나온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80%가 대통령의 탄핵 인용에 찬성했다. 이는 두 달 전 국회의 탄핵 직후의 조사 때와 비슷한 추세다.

최근 태극기 집회 참가자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고, 박 대통령이 신년 초와 설 연휴 직전 두 번의 인터뷰를 통해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변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서 대통령 대리인단이 보여주는 재판 지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 탄핵인용에 대한 찬성 여론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태극기집회 참석자 수가 아무리 많아도 국민의 15%만을 대변할 뿐이다. 즉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순수한 보수 세력들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촛불집회 참석자 수가 최근 줄어들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자주 등장한다. 촛불집회의 경우 참가자 수와 관계없이 국민의 80%가 그 집회의 대의(大義)에 동감(同感)하고 있음을 언론들은 주목해야 한다.

촛불집회는 단순히 박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최순실씨를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잘못된 시스템으로 움직였던 구체제를 벗어나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어 우리 세대 뿐 아니라 자식세대들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촛불혁명의 진정성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다. 박 대통령이 대면(對面)해야 할 역사는 바로 이 같은 국민의 여론이고 선택이다. 그 역사를 대면하지 않으려는 행태가 지금 특검의 대면조사 회피와 헌재 출석 기피로 나타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역사만을 보려하지 말고, 국민이 바라고 선택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훗날의 역사가들이 정론직필(正論直筆) 할 수 있도록 박 대통령은 특검의 대면조사에 응해야 하고, 헌재에 출석해 헌법재판관들의 신문에 떳떳하게 답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촛불집회로 시작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쓰기에 동참하는 길이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총선에 참패한 뒤 여의도 당사를 매각하고 천막당사를 지어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자처했을 때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죽고자 한다면 역사에서 살아남을 것이고, 계속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역사에서 지워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이 있다. 벼랑 끝에 서서 낭떠러지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음을 각오해야 가능한 일이다.

박 대통령은 잘못된 역사와의 대화에서 벗어나 하루속히 제대로 된 역사와 대면해야 한다. 태극기집회 뒤에 숨어서 계속해서 역사와의 대면을 회피한다면, 탄핵과 대선 등의 정치 일정이 끝난 뒤에도 대한민국은 세력 간 갈등으로 인해 혼란이 지속될 것이다. 그 책임은 오롯이 박 대통령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여론(輿論)이 역사다. 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여론이 보여주는 역사를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한다. 선택은 빠를수록 좋다.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많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