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우문우답(愚問遇答)...촛불민심을 제대로 거슬렀다

2017-01-26 00:10
박근혜 대통령 헌재의 탄핵시계 빨라지자 '육성 반격'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는 말이 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탄핵심판 시계가 빨라지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한 인터넷 TV와 인터뷰를 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인터뷰란 형식은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의 말을 최대한 듣고자하는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 나선 인터뷰어는 질문에 이미 많은 답을 내포하고 있었다. 짧은 답변과 긴 질문의 형식.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하는 것을 말한다. 질문은 핵심에서 비켜나 있고, 답은 공허했다. 우문우답(愚問遇答)이 멀리 있지 않았다.

이날은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이 “3월 13일까지 대통령 탄핵심판이 결정돼야 한다”며 탄핵시계를 앞당기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날이다. 박 헌재소장은 “헌재의 결정은 9인의 재판관으로 결정되는 재판부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서 도출되는 것이어서 재판관 각자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자신의 임기가 이달 말에 끝남에 따라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임기 전에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박 헌재소장은 “특히 재판관 1인이 추가 공석이 되는 경우 이는 단지 한 사람의 공백을 넘어 심판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한 헌재소장이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대통령의 대리인단이 증인을 대거 신청하며 선고를 지연시키는 꼼수를 질타한 것으로 풀이된다.

헌재가 이날 오전 이런 입장을 밝히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박 대통령의 인터넷 TV 출연이 등장한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런 절묘한(?) 시점을 두고, ‘기획’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과 인터뷰를 진행한 인터뷰어는 최근 방송에 나와 박 대통령의 입장을 두둔해 논란을 빚었기 때문에 이런 분석에 힘이 실렸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대통령 대리인단의 소개로 인터뷰를 하게 됐다는 배경 설명도 이를 뒷받침했다.

어찌됐든 좋다. 탄핵시계가 숨 가쁘게 돌아감에 따라 대통령측도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 문제는 인터뷰의 내용이다.

그동안 일각에서 떠돌던 이상한 소문을 거론하면서 이것이 마치 언론이나 여론인 것처럼 물어보자, 박 대통령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맞받아친다. 질문은 또 찌라시에 나올법한 여러 가지 의혹으로 이어진다. 박 대통령은 “나라의 품격이 떨어지는 이야기”라며 “거짓말이 산더미처럼 쌓였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어마어마한 거짓말이며 탄핵 근거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느꼈다”고도 했다. 국회가 탄핵한 것은 이상한 소문에 근거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자신의 탄핵소추 사유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

국민들이 정작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없었다. 이날의 질문을 정리하면 풍자누드화에 대한 의견을 시작으로 청와대 굿, 향정신성의약품 중독, 정윤회 밀회, 최순실의 테블릿 PC, 최순실과 고영태의 관계, 정유라에 대한 소문, 최순실의 국정농단, 조윤선 구속에 대한 의견, 유진룡 전 장관의 발언, 이번 사태를 뒤에서 조종한다는 느낌,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 비교, 여성비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정작 검찰 수사결과나 특검에서 발표한 수사 상황, 탄핵사유 등에 대한 질문은 빠져 있다. 그러면서도 비선실세 최순실씨와의 경제공동체란 부분에 대한 질문은 잊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답변을 정리하면 풍자 누드는 현재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고, 유진룡 전 장관은 말을 바꾸고 있고, 조윤선 전 장관은 구속감이 아니라고 했다. 굿도 해본 적이 없고, 향정신성약물 근처에도 안갔으며, 최순실과는 억지로 엮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도 인정할 수 없으며 최씨가 개인적으로 사익을 취한 것은 자신은 알지 못했다며 선을 그었다. 블랙리스트도 몰랐다고 했다. 특히 이런 사태를 누가 뒤에서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라는 느낌이라고 했다. 사드와 트럼프행정부 출범, 새누리당 사태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엉뚱한 답변’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시간에 걸친 질문과 답변을 관통하는 것은 박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이 왜 탄핵이 됐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검찰이나 특검 수사 등을 통해 확인된 사안에 대한 질문은 소홀하게 다뤄지거나 아예 없었다. 기업들을 옥죄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을 만든 사실, 블랙리스트로 문화예술인을 탄압한 일, 최순실의 각종 국정농단, 그리고 세월호7시간 등 핵심 질문은 없었다. 그로 인해 그동안 검찰이나 특검에 의해 구속된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장관 등이 그렇게 많은 것에 대한 부분은 ‘쏙’ 빠졌다.

박 대통령은 태극기집회에 대한 질문에 “최근 태극기집회 참석자수가 촛불집회의 2배”라며 “그분들이 돈도 날리고 날씨도 추운데 계속 나오시게 된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법치를 지켜야 한다”는 열성 때문이라고 했다. “가슴이 미어진다”라고도 했다.

그렇다. 이번 인터뷰는 더도 덜도 말고 꼭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태극기집회에 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박 대통령은 “아직은 정해진 것이 없다”며 촛불집회에는 나갈 생각이 없다는 것과 달리 여운을 남겼다.

3개월에 걸쳐 10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든 것이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기획된 것 같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은 촛불민심을 제대로 거스른 것이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