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365] 국가지도자의 명예

2017-02-21 14:31

[주 진 정치부 차장]

‘부끄러움은 왜 국민의 몫인가’

수세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전 자진사퇴하는 것 아니냐는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에게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으로 뇌물죄 혐의가 더욱 짙어진데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이 거의 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측이 검찰·특검 조사를 피하면서 동시에 헌재의 탄핵심판 기각을 위해 다양한 지연 전략을 써왔지만, 더 이상의 꼼수가 통하지 않은 것도 한 이유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특검의 대면조사도, 헌재의 최후변론 출석 여부도 속 시원히 밝히지 않고 버티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춰달라며 특검의 대면조사 일정과 장소 비공개. 장소는 청와대 경내를 고집했다. 헌재 최후변론도 3월로 연기해달라고 속이 뻔히 보이는 지연 전략을 쓰더니, 국회와 재판관 측의 신문이 있다면 출석하기 어렵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국가지도자의 예우를 받아야지만 명예를 지키는 일인가?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진정으로 명예로운 일인지 생각해보라.

박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현재 각종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다. 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로 국가의 명예와 국민의 자존심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박 대통령은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당사자로서 국민적 의혹을 풀어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진실 규명을 위해 정정당당하게 나서지 않고, 자신의 열성 지지층인 친박 단체의 태극기 뒤에 숨어 ‘애국자 코스프레’ ‘정치적 희생양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며 청와대를 제 발로 걸어 나오는 장면을 연출하면 보수층 뿐 아니라 일부 국민들에게도 동정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자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은 비운의 영애로 보수층의 탄탄한 지지를 받아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그다.

국민들이 둘로 갈라져 사생결단으로 싸우든 말든 ‘나만은 살아야겠다. 구속은 어떻게라도 피해보자'는 심산이 깔려 있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탄핵 인용 전 자진 사퇴하면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있고,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도 받게 된다. 게다가 특검 수사 기간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당장 구속되지도 않는다.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검찰로 수사권이 넘어가게 되더라도 적어도 2-3개월 동안은 시간을 벌면서 지지층을 규합해 정치적 재기를 노려볼 수도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 자진사퇴후 60일간 대선레이스가 펼쳐지면 국정농단 사태 수사는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경우 들어서자마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일로 시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노림수다.

그러나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1000만 촛불의 민심이다. 법과 원칙이 그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외치는 국민들의 요구가 더 큰 분노의 촛불이 되어 광장의 밤을 불태울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국민은 ‘부끄러움을 아는 대통령’을 원한다.

특검 조사에 당당히 응하고, 억울함이 있다면 헌재 최후 변론에서 자신의 입장을 소상하게 국민에게 알리기 바란다. 탄핵 인용 후 자진 사퇴해도 늦지 않다.

                                                                                                                                   
 주진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