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향한 마윈의 경고장…전략적 밀당과 현실적 고민 사이

2017-02-10 10:59
일자리 창출 약속 후 돌연 미국 보호무역주의 비판
‘짝퉁 제품 옹호’ 발언처럼 또다시 꼬리 내릴지 관심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아주경제 김봉철 기자 = “지금 모두는 무역 전쟁을 염려하고 있는데, 단순히 염려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제적 활동이 사람들의 소통을 도와준다는 점을 우리 스스로가 증명하는 데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에 대한 마윈(馬雲) 알리바바그룹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던 마윈 회장이 최근 알리바바 호주·뉴질랜드 본부 개소식 연설에서는 미국 보호무역주의를 에둘러 비판하고 나섰다.

마 회장은 이어 “우리는 공정하고 투명하고, 포괄적인 무역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용한 ‘흥미로운’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의 IT 거물의 한마디에 그동안 트럼프의 압박에 눈치를 보던 기업들도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그동안 마 회장의 선이 굵고 공격적인 스타일은 중국보다는 미국의 정서에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새로 출범한 트럼프 정부와의 궁합도 생각보다 잘 맞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실제 마 회장은 지난달 당선자 신분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국에서 일자리 100만개를 만드는 방안을 논의했다.

트럼프는 면담 직후 “마윈과 나는 오늘 훌륭한 미팅을 했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미국을 사랑하고, 중국을 사랑한다. 마윈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가 중 한 명”이라고 치켜세웠다.

미국 측은 자국 소기업이 중국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미국에서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윈 회장은 “앞으로 5년내 미국 소기업 100만개를 타오바오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 등재시켜 미국산 제품을 중국은 물론 다른 아시아국가에서도 팔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알리바바는 트위터를 통해 “미국 소기업과 농부들이 중국의 3억 중산층에게 제품을 판매하도록 해 미국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면서 ”알리바바는 미국 중·서부 지역에 있는 소기업 1만5000∼2만곳과 회담을 열 계획도 있다“고 전했다.

마 회장은 “우리는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더욱 우호적이고 공고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마 회장이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한 배경은 전략적인 포석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본인이 투자권을 쥐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마 회장이 언급한 미국 중·서부 지역은 트럼프 대통령이 속해 있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텃밭이다.

또한 대규모 곡창지대가 자리 잡고 있는 이 지역은 미국 내에서 굉장히 낙후된 곳으로 꼽힌다.

중·서부 지역민들은 멀리 떨어진 마트에 직접 운전을 해서 장을 보는 대신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알리바바를 통해 중국의 값싼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텃밭에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물’을 안겨줘 표심을 관리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마 회장 입장에서도 양국의 정부에게 모두 환영 받을 프로젝트를 통해 사업 확장을 동시에 노릴 수 있게 됐다.

그는 지난해 ‘짝퉁 판매 논란’으로 중국 정부에 찍힌 뒤부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마음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특별대담 패널로 참석해 중미 양국의 외교 중재자로 나설 정도다.

마 회장은 이 자리에서 세계화와 반(反)보호무역주의를 제창한 시 주석의 입장을 지지했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이번 발언 역시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마 회장이 ‘짝퉁 제품 옹호’ 발언처럼 사업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다른 발언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는 지난해 6월 중국 항저우(杭州) 알리바바 본사에서 열린 ‘투자자의 날’ 행사에서 “요즘 짝퉁은 가격은 물론 품질 면에서도 진품보다 낫다. 진품이 생산되는 똑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원자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단지 브랜드가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중국 공장이 애플·루이뷔통의 주문 지시를 받아 제품을 납품했지만 이젠 중국 공장이 자체적으로 물건을 판매하기 시작했다”면서 “인터넷 발달로 사업 방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명품업계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초 마 회장의 발언은 전 세계가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야 하고, 짝퉁 판매 근절을 위해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른바 짝퉁 제품을 만드는 중국 업체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이어지면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알리바바 인터넷몰인 타오바오는 최근 공상총국이 판매 제품 일부를 샘플 조사한 뒤 짝퉁 판정을 내리자, 부정확한 조사로 피해를 입었다며 법적 대응을 추진했다가 결국 중국 정부에 무릎을 꿇었다.

마 회장은 이 문제로 중국 정부와 갈등을 빚은 끝에 공상총국을 방문해 짝퉁 판매 사태에 대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오픈마켓 형태 인터넷몰이 모든 판매 제품을 일일이 단속할 수 없고 정부 차원에서 제조업체를 단속해야 한다는 논리였으나, 중국 정부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편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 고객은 4억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마 회장은 2036년까지 온라인 고객이 20억명을 넘기겠다는 목표다. 아울러 2020년까지 전체 매출 규모를 현재의 2배인 6조 위안(약 1000조원)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