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경 대사 내정 모르쇠 외교부

2017-02-02 08:13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유재경 주 미얀마 대사 인선에 최순실 씨가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유 대사 임명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직업 외교관이 아닌 사람 중에서 대통령이 임용하는 '특임 공관장' 제도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에서도 특임 공관장 제도는 보편화해있지만 '비선실세'가 대사 인선에 개입해 인사안을 관철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만큼 검증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유 대사는 지난해 3월 주미얀마 대사로 내정됐으며,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 같은 해 5월 공식 임명됐다.

유 대사는 비외교관 가운데 공관장으로 발탁되는 이른바 특임공관장 내정 당시부터 발탁 배경에 궁금증이 제기됐었다.

당시 미얀마 대사에는 외교부 본부에서 근무하던 모 국장급 인사가 내정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지만, 인사를 앞두고 막판에 삼성전기 전무 출신의 유 대사가 낙점돼 외교부 국장급 인사는 동남아 다른 나라의 대사로 발령 났다.

기존 외교관 출신의 이백순 주미얀마대사는 2013년 10월부터 재직하고 있었으며 통상 3년의 재외공관장 임기를 약 5개월 앞두고 유 대사에게 바통을 넘겼다.

유 대사 내정 당시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유 내정자가 시장개척 분야를 비롯해 해외근무를 오래 했고, 그런 부분들을 고려했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발탁 배경이나 경로에 대해서는 "그건 제가 답을 못하죠.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말했었다.

외교부는 유 대사가 최순실씨의 추천으로 대사로 임명됐다고 시인한 현 상황에서도 유 대사의 임명 배경에 대해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31일 정례브리핑에서 "유 대사는 특임공관장이고, 특임공관장은 대통령이 비(非) 직업외교관에 대해 공관장 임명권을 행사하는 제도"라면서 "인선과정에 대해 외교부로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외교부가 유 대사의 임명과정에 대해 애써 함구하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특임공관장 선임과 관련한 주무부처이면서도 철저히 배제된 채 단순히 인사결과를 발표만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청와대가 유 대사의 임명을 일방적으로 강행했을 경우라도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특임공관장으로 임용할 수 있다'는 외무공무원법상 특임공관장 제도 취지에 비춰 외교부와의 협의 과정이 실종된 것이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특임 공관장에 대한 검증 제도의 보완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임 공관장은 직업 외교관이 받는 엄격한 '공관장 자격 심사' 대신 서면 심사만 받고, 외부 위원이 참여하는 심사위원회의 심사 절차도 거치지 않기에 인사 검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 등의 검증 절차를 거친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이 낙점한 인사에 대해 정부 안에 있는 사람이 반대 의견을 표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견해가 많다.

대사 경력을 가진 한 전직 외교관은 1일 최순실 씨의 대사 인사 개입에 언급, "30년 정도에 걸쳐서 제대로 된 대사 한 명을 양성하는데 종잡아 수십억 원이 들어간다고 봐야 하는데 일국의 대사가 이렇게 임명되다니…"라며 개탄했다.

이 전직 외교관은 "외교부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받아들였다"며 "외교부는 '특임공관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만큼 우리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남 이야기하듯 반응하는데 안타깝기까지 하다"고 덧붙였다.

외교부 인사 관행에 정통한 한 현직 외교관은 "특임 공관장에 대한 실질적인 인선 절차는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안다"며 "청와대에서 추천한 인사에 대해 외교부가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은 어학시험 정도가 있는데, 사실 외교부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특임 공관장 인사)에 대해 견제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 외교부 간부는 "특임 공관장 제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공관장 인사에서 이권이 개입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특임 공관장이라고 하더라도 인사의 객관성, 정당성, 타당성 등을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간부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특임 공관장 인사에 대한 심사위원회에 외부인(민간인)을 참여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견제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전직 외교관은 "특임 공관장(제도) 고유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외교부 밖의 독립적인 인사위원회 등에서 인사 검증을 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의 경우 우리의 특임 공관장과 유사한 제도가 있지만 대사 임명시 상원의 인준을 받도록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