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2017년 '봄'을 기다리며

2016-12-28 08:40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어차피 밝히지도 못할 거, 속시원하게 호통이라도 쳐주세요."

한 네티즌의 댓글에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은 '용두사미'라는 걸 누구나 알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갖고 방송을 보고 있구나 싶었다.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얘기다.

야심차게 시작됐던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청문회는 갈수록 고성과 질타로 얼룩진 의혹 재생산의 현장으로 전락했다. 물론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들을 넘어설 수 없었다. 최순실 등 주역들은 청문회장에서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청문회를 통해 이 시대의 민주주의가 상상 이상으로 후퇴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뼈저리게 절감했다. 상실감과 절망감만 키웠다.

지난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시킨 결정적 힘은 국민의 촛불이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심판대에 올린 것도 국민의 촛불이었다. 청문회가 진행될수록 '촛불의 힘을 끌고 갈 만한 동력이 정치권에는 있는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과거 정치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이렇게 된 거죠. 반성해야 합니다." 최근에 만난 여당의 비주류 의원은 정치권의 '무능함'을 꼬집자 이렇게 답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사태 수습을 위한 행동에 나설 때가 아닐까.

이미 정치권에서는 탄핵 정국과 맞물린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조기 대선을 예상하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분주하다. 하지만 우울한 세밑에도 촛불을 드는 민심은 그게 아니다. 정치권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며 국정 공백을 메꾸라는 목소리다.  

"늦겨울 태어나는 아침은 가장 완벽한 자연을 만들기 위해 오는 것. 눈 녹아 흐르는 방향을 거슬러 우리의 봄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우울한 시인 기형도의 시 '겨울·눈·나무·숲'의 한 구절이다. 2017년, 우리의 '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