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변종 괴물만 양산하는 부동산규제
2021-06-04 10:07
"규제에 규제를 덧칠했더니 괴물이 탄생했네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 규제의 역설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번 주인공은 아파트와 도시형생활주택이다. 두 상품은 같은 입지에 같은 건물이지만 아파트냐, 도시형생활주택이냐 등의 공급방식의 차이로 분양가만 수천, 수억원 차이가 난다. 아파트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탓에 주변 지역보다 저렴하게 분양됐지만 도시형생활주택은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중구 인현동2가 151-1번지에 분양하는 '세운 푸르지오 헤리티지' 얘기다. 이 단지 아파트 281가구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2906만원으로, 지난해 6월 분양한 같은 단지 도시형생활주택의 293가구의 3.3㎡당 평균 분양가보다 약 900만원 낮게 책정됐다. 전용 42㎡ 기준 1억~2억원 차이다.
조합은 분양가상한제로 아파트가 제 값을 받지 못하자 아파트를 모두 저층에 몰아넣고, 도시형생활주택은 선호도가 높은 고층 위주로 배치하는 전략을 택했다. 비현실적인 분양가상한제가 없었다면 모두 아파트로 탄생할 단지였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상품이 계속 변경되다보니 분양일정이 지연됐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조합 몫으로 돌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분양을 해도 문제다. 층수와 상품설계, 내장재가 다르다고 해도 수요자 입장에서 같은 입지, 같은건물, 같은 인프라의 부동산 가격이 수억원까지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 서울에서 공급되는 복합단지들은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선호도가 높았던 아파트 단지 배치는 점점 열악해지고,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 생활형숙박시설 등 아파트 대체 주거상품이 더 좋은 위치에 공급될 수 밖에 없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10년뒤면 아파트는 하급주택으로 전락하고, 도시형생활주택이 고급 아파트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에 필사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건 기업의 숙명이다. 아파트와 도시형생활주택의 불편한 동거는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기업의 처절한 몸부림이자 몸은 하난데 머리는 두개인 기형적인 괴물이다. 정부가 시장에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겹겹이 덧칠한 스케치북이 찢어지기 전에 정부가 낭비한 행정력의 비극을 되돌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