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라디오 시대④] 나의 라디오스타에게
2016-11-11 19:45
[편집자주] 즐기고 볼 것들이 넘쳐나는 지금, 라디오의 위기를 논하는 것은 이미 너무 새삼스러운 일입니다. 영국 밴드 더 버글스가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고 외친 것이 이미 1980년이니까요. 하지만 끊임없는 위기론에도 라디오는 끊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미디어를 통해 당신과 거리를 좁히고 보이는 라디오, 팟캐스트와 같은 주문형 방송으로 다각적 접근을 이끌어 내면서 라디오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라디오 시대!"라고 외치는 이유입니다. 뒤숭숭한 시국에 절망했나요? 고단한 삶에 지쳤나요?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노래가 그대를 향해 울리"니까요(신승훈의 노래 '라디오를 켜 봐요').
아주경제 정진영·김은하 기자=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라디오에서 웃음을 얻는지도 모릅니다. 러시아워에 갇혀 씩씩거릴 때, 새벽까지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 아니면 뉴스를 보고 있자니 세상엔 참 이상한 사람들만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요즘 라디오를 틀어보세요. 당신의 생각에 귀 기울일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히어로가 별건 가요. 찡그린 미간을 슬며시 펴지게 하고 피식, 웃음 짓게 만드는 사람. 그게 일상의 히어로죠. 메마른 일상에 소소한 웃음을 줬던, 인생의 순간을 조금 더 반짝거리게 했던, 나의 라디오 스타에게 보내는 사연입니다.
▶To. SBS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김창완 아저씨에게
그 때문일까요. 아저씨 방송을 들으면 나이를 잊게 되요. 아, 이제 저도 아줌마가 되었네요.
50대 목동 정씨
▶To. MBC ‘강석·김혜영의 싱글벙글 쇼’ 강석·김혜영 씨에게
사실, 그 날이 없었다면 저는 두 분이 부부인 줄 알았을 거예요. 1988년 5월 4일이요. 김혜영 씨는 결혼식날에도 생방송을 했잖아요. 웨딩드레스를 입고요. 그 상황이 어찌나 재밌던지. 강석 씨가 방송 끝나고 김혜영 씨를 결혼식장까지 태워주시고, 또 결혼식 사회도 봐주시고. 그런 일이 방송사에 또 있을까요?
당시에는 마냥 웃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 사건을 떠올리며 버팁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김혜영은 결혼식날에도 생방송을 했지,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가서도 제주 MBC에서 이원 생방송을 했지, 애를 낳고도 2주 만에 라디오에 복귀했지 하면서요.
두 분 덕에 30년을 싱글벙글했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50대 전주 김씨
▶To. MBC ‘밤의 디스크쇼‘에게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밤을 함께 보낸 라디오 프로그램은 무수하지만 가장 각별한 것은 ‘밤의 디스크쇼’예요. ‘밤의 디스크쇼’의 DJ였던 이상은, 신해철, 윤상이 모두 제 사연을 읽어줬으니까요. 학창시절에 한번은 하루 온종일 혼났던 적이 있어요. 토요일에도 4교시까지 수업을 할 때였는데 1교시에는 떠들다 맞고, 2교시에는 도시락 까먹다 맞고, 3교시에는 숙제 안해서 맞고, 4교시 멍 때리다 맞았어요. 서러워서 ‘밤의 디스크쇼’에 사연을 보냈는데, 당시 DJ였던 이승은 씨가 “하루 종일 혼난 날이 있으면 하루 종일 칭찬받는 날도 있을 거예요”라고 코멘트를 해주셨죠.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그때받은 사랑과 위로 나누고 싶어 라디오 DJ를 합니다. DJ가 전한 위로가 청취자에게 얼마만큼 위안이 되는지 잘 알기에 문자 하나도 허투루 읽는 법이 없어요. 그들이 그랬듯이요.
-‘김영철의 파워 FM‘ DJ 김영철
▶To. MBC ‘별이 빛나는 밤에‘
그것 뿐인가요. '별밤' 공개방송을 가보겠다고 보낸 사연들은 얼마나 무수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다 좋은 추억이네요. 그때는 몰랐지만 '별밤'이 아니었다면 언제 서태지와 야자타임을 해 보고 라디오 DJ가 그만둔다고 반대 편지를 써 봤겠어요. 돌이켜 생각하니 '별밤' 안에는 저의 가장 젊고 아름다웠고, 또 방황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네요.
40대 서울 김씨
▶ To. SBS ‘고스트 스테이션‘ 나의 영원한 마왕, 신해철에게
나도 이제 어느덧 사회인이 돼서 몇 년 째 출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어. 예전엔 화나는 일도 많고 울 일, 웃을 일도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젠 그냥 졸리기만 해. ‘고스트 스테이션‘이 아직도 방송되고 있다면 내가 다시 새벽 2시에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때는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하는데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주파수를 맞췄었는데. 새벽 방송을 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제야 알겠다.
나이가 많든 적든, 잘살든 못살든 모두 평등하게 말을 주고받았던 그 ‘고스트 스테이션‘ 홈페이지 게시판과 가끔 피가 난자하고 가끔은 따뜻했던 마왕의 목소리가 그립다. 잠들지 못 하던 우리들 곁을 지켜 줘서 고마워.
20대 인천 송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