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원칙과 신뢰의 정치... For the people

2016-11-08 07:00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장]


국민 불신의 시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실시한 지난해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종합순위는 조사대상 138개국 중 3년째 26위이다. 우리나라는 참여정부 집권 마지막 해인 2007년 11위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이후 매년 하락을 반복해왔다.

세부지표를 살펴보면 더욱 최악이다. 정부 정책결정의 투명성은 115위로 사실상 아프리카 저개발국 수준이나 다름없다. 정치인의 공적신뢰도(96위), 공무원 의사결정의 편파성(82위) 등도 순위 하락을 이끈 주범들이다. 정부정책은 대통령을 비롯한 장차관과 청와대 정무직 등이 결정하는데 국민이 바로 이들을 불신하는 것이다. 저생산성(低生産性) 식물국회에 대한 국민적 비판은 이미 오래다.

2007년 당시 공무원 의사결정의 편파성은 15위였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강력한 정부혁신을 통해 공무원을 개혁의 주체로 내세웠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것이 국민에게 체감된 것이다. 17대 국회는 초선의원이 62.5%가 당선될 만큼 물갈이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따라서 2007년 평가에서 정치인의 공적신뢰도가 22위까지 오른 건 당연하다. 최근 문국현, 안철수, 문재인, 반기문 등 정치신인들의 대선출마 선호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임기 말이었지만 2007년 정부정책결정의 투명성은 그래도 34위로 낮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가 규정하듯이 민주공화국으로 주권자는 국민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행정권(대통령)과 입법권(국회)은 선출된 권력에게 임기 동안만 위임될 뿐이다. 그것이 근대 대의제민주주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권력인 행정권(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115위, 입법권(국회)에 대한 신뢰도 또한 96위에 불과하므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처럼 8~9년간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몇몇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국가의 공적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되었다라고 규정해야 마땅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30%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원칙과 신뢰라는 트레이드마크가 그의 든든한 무기였다. 30%에서 5%로 추락하는데 불과 한 달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국 역사에서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경우는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유일하다. 그는 의회가 탄핵 절차가 밟기 시작하자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2년 만인 1974년 8월 9일 스스로 사임의 길을 선택했다. 그에게 적용된 탄핵사유는 사법방해, 권력남용, 의회에 대한 모욕 등이었다.

닉슨을 궁지에 몰아넣은 이들은 다름 아닌 그가 임명한 공직자들이었다. 백악관 부보좌관 출신의 버터필드는 1973년 7월 16일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1971년 2월부터 1973년 7월 18일까지 백악관 집무실에서 녹음된 수천 시간 분량의 테이프가 있으며 대통령이 사건의 은폐공작에 관여한 내용도 포함돼있다”는 폭탄증언을 해버린다.

녹음테이프 제출을 요구하라는 콕스 특별검사의 해임을 요청한 닉슨에 맞서서 사표를 제출해버린 리처드슨 법무장관과 러클하우스 법무장관 대행 역시 바로 닉슨 행정부의 각료들이었다. 새로 임명된 자워스키 특별검사는 연방 대법원에 이의를 제기했고 연방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판결했다.

뒤늦게 밝혀졌지만 FBI(미국연방수사국) 부국장 마크 펠트까지 나서서 워싱턴 포스트의 무명기자들에게 중요한 제보를 계속 해주며 지루한 싸움의 종지부를 끊게 해주었다. 그 역시 상원 인준 청문회를 거쳐 닉슨이 임명했지만 연방법에 의해 의회나 대통령도 간섭할 수 없는 수사권을 완전하게 행사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며,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일찍이 막스 베버가 “공무원은 영혼이 없어야 한다”고 설파했지만 그것은 대통령과 장관의 불법적인 지시를 무조건 복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무직이든 임명직이든 공무원은 결코 조폭이 아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다.

최광웅(데이터정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