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의 행복한 경제] 새집도 재건축이 되나요?

2016-11-02 15:00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새집도 재건축이 되나요? 요즘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질문이다. 조금 손보면 새집처럼 살 수 있는데, 30년밖에 안된 아파트들을 다시 갈아엎고 재건축을 한다. 오래된 단독 주택이지만 주인의 손길이 닿을수록 버틸만한데 다 쓸어버리고 고층 아파트로 재개발을 한다. 고치면 새집이 될 수 있는데 중간에 일찍 버려지고 낭비된다. 아파트나 주택도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 운동이 필요하다. 이처럼 사람의 집은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통해 고층 아파트로 변해간다고 하는데, 아파트나 주택 옆의 키 큰 나무에 살단 새들의 집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새집도 재건축이 되는 것인가?

과천 주민의 입장에서 과천 집값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서울에서 가깝다는 점, 지하철을 비롯한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 관악산과 청계산 사이에 위치해서 녹지가 많고 공기가 맑다는 점, 인구 7만 정도의 소도시로서 유흥가 등 자녀교육에 유해한 환경이 별로 없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저층 아파트 단지가 순차적으로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 눈높이에서 저층 아파트의 지붕이 보이고, 아파트 지붕보다 높은 미루나무와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올려다보는 즐거움을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될 것 같다. 건축된 지 30년밖에 안된 튼튼한 집들을 다 갈아엎고 30층 안팎의 새 아파트가 다시 들어설 것이다. 충분히 다시 고쳐 쓰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아파트들인데 조금 쓰다가 버려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새집, 새들이 깃들어 있는 집은 어쩌란 말인가? 저층 아파트의 30년 이상 자란 단풍나무, 미루나무, 플라타너스, 은행나무, 느티나무에는 직박구리와 까치, 까마귀, 산비둘기는 물론이고 빨간 깃털이 예쁜 딱따구리도 살고 있다. 아파트 재건축이 시작되면 그 오래된 나무들도 베어져 사라질 것이고, 그 예쁜 새들도 30년된 터전을 잃어버리게 된다. 새로운 고층 아파트 단지가 다시 들어서기까지, 그 단지 안의 생경한 나무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어디선가 입을 삐쭉거리면서 비를 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소득의 불평등도 심각하지만 자산의 불평등도 심각하다. 자산의 불평등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파트의 재건축이고, 주택의 재개발이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소득이 높고 자산이 많아서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분들이다. 부동산 투자든 투기든 서민들과는 무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자산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최근에는 금리를 낮추고 대출 관련 규제를 풀어주면서 부동산 거래가 늘고 경기가 잠시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골병이 들고 있다. 가계부채는 늘어났고 집값과 전세는 계속 올라가 부동산 버블을 걱정하게 되었다. 부동산 경기에 따른 착시현상으로 인해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개혁과 업종별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는 점도 부동산 경기 활성화의 부작용이다. 부동산을 통해 불로소득과 초과이윤(렌트)의 추구를 조장하는 경제에서 누가 열심히 일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제살을 깎는 구조조정과 혁신을 감내할 것인가?

땅에서 가깝고 시야가 편안한 집을 제 돈 내고 리모델링을 하면서 오랫동안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을 공동체를 일궈가면서 사람 냄새를 맡아가면서 살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먼저 집값이 안정되어야 한다. 주택 가격과 상가의 임대료가 자꾸 올라가고 재개발을 통해 고층빌딩이 올라가면 서민들과 임차인들은 그곳에서 밀려나게 된다.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다. 돈의 논리가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와 연대(solidarity) 이외에 무엇이 있을까? 주택과 부동산 관련 규제와 절차를 제대로 지키도록 정책의 집행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 제대로 감시하는 것 역시 그 지역의 공동체와 시민단체 이외에 누가 할 수 있을까? 잠시 눈을 돌려보면, 작은 것이 아름답고,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