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블랙홀 대선정국도 덮쳤다…대권 정계개편 회오리
2016-10-24 17:19
개헌, 87년 체제 이후에도 국면전환용 카드 전락…친박계 및 야권 비주류 촉매제 역할론 부상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개헌발(發) 정계개편이 여의도에 상륙하면서 여야 권력 구도도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개헌의 키를 쥔 박근혜 대통령이 제7공화국 헌법 개정 논의의 ‘화룡점정’을 찍었다는 점에서 이슈의 폭발력은 메가톤급으로 격상할 것으로 보인다.
개헌 이슈가 2017년 대선까지 화약고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를 매개로 여야 간 ‘창조적 파괴’ 등을 골자로 하는 ‘헤쳐 모여’가 불가피하게 됐다는 얘기다.
◆ 개헌, 87년 체제 이후 단골메뉴…흑역사 오욕
첫 번째는 1990년 3당(민주자유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이다. 19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를 맞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정국 주도권을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로 3당 합당을 꺼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평생의 경쟁자인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카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평생 숙원인 의원내각제 관철을 위한 승부수였다.
이후 JP는 YS에게 내각제를 조건으로 대통령직을 사실상 양보했지만, 이후 상도동계의 홀대로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JP는 이듬해 1996년 총선에서 50석을 차지하면서 ‘녹색 열풍’을 일으켰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는 DJ가 ‘이회창 대세론’을 깨기 위한 승부수로 DJP 연합을 꺼냈다. 고리는 내각제를 골자로 한 연립정부 구성이었다. 그러나 내각제는 결국 무산됐고, 이들은 결별했다.
◆ 與 이원집정부제…野 제3지대론 급부상
이번 개헌도 비슷한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개헌 각론이 백가쟁명식 논쟁으로 흐르는 상황에서 대권 고지 선점을 위한 명분용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정치사에서 개헌은 ‘장기집권을 위한 획책’(87년 체제 이전), ‘정권교체를 위한 수단’(87년 체제 이후)에 불과했다. 정당성을 가진 개헌은 총 9차례 개헌에서 4·19 혁명 직후인 3차와 4차 헌법 개정 두 번뿐이었다.
공언한 대로 박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할 경우 여권 내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의 극한 갈등으로 여권 분열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비박계와 야권 내 비문(비문재인)계가 개헌을 고리로 제3 지대론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개헌의 핵심으로 하는 제3 지대, 내각제론자인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비패권지대’ 등을 주장한 바 있다. 이원집정부제를 근간으로 하는 친박계의 ‘대통령 반기문-국무총리 친박 실세’도 유효한 카드다.
개헌발 정계개편이 적어도 현재 대권 삼국지인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과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 구도에는 균열을 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애초 20대 국회 개헌이 국민의 기본권 조항 등 포괄형 개헌 논의의 당위성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의 근본적 변화는커녕 국면전환 수단으로 전락하는 오욕의 연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통화에서 “개헌 논의는 국론분열만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