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바실 홀(Basil Hall)의『조선 서해 탐사기』

2016-10-19 08:32
인천에 관한 서양인의 최초 기록

아주경제 박흥서 기자 =19세기 서구인들은 동양인의 생활이나 관습 등에 관심이 많아 여행을 통해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런 까닭에 조선에는 우수한 모피와 종이, 아름다운 도자기, 인삼이라는 영약, 풍부한 해산물이 있다거나, 옷을 장식할 정도로 금이 흔하고, 묘에는 호화로운 부장품을 함께 묻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러한 기록들은 여행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넘어서 한국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분석을 불러 일으켰다.

서양인이 묘사한 인천과 관련된 첫 기록은 동인도회사에서 근무하던 해군장교 홀(Basil Hall)의 서해 5도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인 『조선서해탐사기』(Account of 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이다.

주 중국 대사인 맥스웰(Murry Maxwell) 대령과 홀은 백령도 해안과 그 일대의 섬들에 대한 측량을 하고, ‘써 제임스 홀 군도(Sir James Hall′s Group)라고 해도에 기록했다.

이후 그들이 작성한 해도에 따라 서해 5도는 홀 군도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홀 일행이 1816년 9월 1일 아침 9시, 백령도의 한 만에 정박한 뒤 섬에 상륙해서 본 것은 ‘갈대에 진흙을 발라 대강 엮은 듯한 40채의 집들과 얼굴이 구리 빛으로 탄 험상궂고 약간 야만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외국인이 본 소청도[1]


이것이 영국인의 눈에 비친 백령도 주민들의 첫 인상이었다.

중국을 거쳐 온 홀은 특히, 전족이 궁금했던지 이곳 여인들의 발이 ‘중국에서처럼 죄이지 않은 보통 크기였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홀은 그 후 10일간의 여정으로 서해의 몇몇 해안 지역과 제주도 등지를 탐사한 뒤 약간의 한국어 어휘를 채집하고 귀환했다.

이후 인천에 대한 기록은 미국인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 프랑스의 여행가 샤를 바라, 아놀드 새비지 랜도어, 영국의 작가 이사벨라 비숍 등의 개항장 방문기에서 묘사되고 있다.

외국인들의 인상은 대개 제물포의 고즈넉한 풍광을 소개하거나 각 조계지의 건물과 활기찬 거리나 사람들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서양인이 본 제물포[1]


특히,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최초로 발간된 잡지인『Korean Repository』(1892.1.~1898.12.),『Korea Review』(1901.1.~1906.12.)에는 근대 건축물이 즐비한 일본, 청국, 외국인조계지의 이국적인 풍광이 비교적 자세히 서술되고 있고, 제물포클럽 개회식 모습, 그밖에 강화에 대한 인상과 인천항에서의 역사적 사건(제물포해전 등)이 기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