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용기란 겁이 나도 하는 것" 편견을 깨고 도전하는 딜럽 이지웅 대표

2016-10-17 11:23

[사진=이지웅 딜럽 대표]

아주경제 김호이 기자 =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호이의 사람들 김호이 입니다.
여러분 혹시 생리대 하면 어떠한 생각이 먼저 드나요? 여성이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실 텐데요.
이번 인터뷰는 소외계층을 위한 '착한 생리대'의 주인공 딜럽의 이지웅 대표입니다. 편견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이지웅 대표의 인터뷰를 통해 편견에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청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Q. 딜럽이 패션브랜드 회사로 알고 있는데 대표적인 제품이 무엇인가요?
A. 저희는 10대에서부터 20대들이 좋아하는 스트리트 패션·의류를 만듭니다.
편하게 입을 수 있고 캐주얼보다는 조금 더 자유분방한, 그래서 맨투맨이라던가, 후드라던가, 티셔츠, 볼캡, 스냅백 등 젊은 층이 좋아하는 스트리트 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Q. 딜럽을 창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제가 캄보디아라던가, 인도라던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권 빈민가 아이들을 보게 되었고, 그 아이들이 지속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해요.
근데 그 아이들이 받는 교육으로 뭔가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패턴화시켜서 패션에 적용해서 패션브랜드로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Q. 딜럽이 패션브랜드를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인간의 순환구조인 의·식·주 중에 순환구조가 빠른 것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있는데요.
옷이라는 것이 자신을 나타낼 때 쓰잖아요. 자리에 맞게 옷을 입고, 사람을 만날 때 옷을 입고, 상황에 맞게 옷을 입기 때문에 자신을 담아낼 때 쓴다는 아이덴티티가, 뭔가 캄보디아 아이들의 가치를 넣기에 좋은 아이템인 거 같아서 패션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딜럽이 패션브랜드 말고도 '착한 생리대'로도 잘 알려진 걸로 알고 있는데, 착한 생리대를 개발하게 된 계기와 착한 생리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착한 생리대를 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 취약계층 아이들 중에서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게 생리대를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소비자가 하나를 사면 하나가 기부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제작 중에 있는데 착한 생리대의 브랜드는 딜럽이라는 이름과 별개로 내년 봄 정도에 '산들산들'이라는 브랜드로 론칭할 거예요. 산들산들이라는 브랜드의 생리대 하나를 사면 하나가 기부되는 구조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Q, 생리대는 여성이 사용 하는데 남성인 대표님이 개발을 하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우려의 시선은 없었나요?
A. 처음에 기사가 나오고 화제가 되고 나서 "네가 생리대를 만들 줄 몰랐다"라는 반응이 나왔지만, 제가 어느 정도의 진행절차를 거치고 나서 공개를 한 거라서 지금은 많이 응원을 해주고 계세요.

Q. 딜럽을 운영하면서 즐거웠거나, 힘들었거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A. 가장 즐거운 것은 저희가 매년 1월에 소비자와 함께 봉사팀을 꾸려서 캄보디아 오지로 들어가요. 그분들과 봉사를 하고, 아이들이 매년 갈 때마다 교육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더 그리고 싶어 하고 배우려는 욕구를 가지려고 할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반대로 힘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자본력이였던 것 같아요. 좀 더 다양한 제품을 넓은 스펙트럼으로 만들고 싶은데 아이디어는 너무나 많은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도 갖춰져 있는데 다른 브랜드처럼 한 시즌에 30개~50개씩 만들 수 없으므로 그럴 때 좀 많이 힘듭니다.

Q. 앞서 캄보디아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외국에 많이 다니다가 사회적으로 동남아시아 빈민가 아이들을 보게 됐는데, 마침 캄보디아의 NGO(비정부기구) 센터와 연계가 돼서 캄보디아를 갔는데 사는 게 너무 열악했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캄보디아 외에 다른 나라에도 봉사를 나갈 계획이 있나요?
A. 네! 앞으로 딜럽이 확장하면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볼리비아, 난민국가, 아프리카까지 뻗어 나가는 것이 바램이죠

Q, 최근 주위의 시선과 편견으로 인해 도전을 못 하는 청년들, N포세대, 7포세대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청년들을 보시면 어떠한 생각이 드시나요?
A. 그 아이들의 잘못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환경을 만들어준 어른들의 잘못인 것 같고요. 그런 환경을 바꾸는 삶이 되는 게 제가 원하는 바이고요.
근데 저 혼자 바꿀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청년들에게도 청소년들에게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Q. 대표님께서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나요?
A. 그죠! 아무래도 제품을 만들고 그러는 건 어렵지 않고요. 사람들의 인식과 싸우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Q,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앞으로 어떠한 노력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A. 지금 하고 똑같아요. 브랜드를 만들더라도 돈을 벌기 위한 브랜드가 아니고 소비를 통한 기부문화 정착을 만드는 것이고요. 예전에는 '기부가 좋다. 사회적인 영리활동은 좋지 않다' 이랬었는데 사회적 기업은 영리활동을 하는 동시에 기부활동도 같이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좋은 선순환 구조를 많이 갖추고 있는 게 제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Q. 대표님은 학생시절 어떠한 학생이었나요?
A. 저는 그냥 특기생이였어요. 제가 운동 선수였기 때문에 반 아이들이 크게 관심을 두던 학생도 아니었고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자주 가던 것도 아니고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Q. 여행이 대표님 삶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스토리를 설명해주세요.
A. 제가 대학교 때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고요. 과연 내가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뭘 해야겠다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죽기 전에 에펠탑 앞에서 바게트 한번 먹어 보자, 피사의 사탑 앞에서 피자 한번 먹어보자, 그래서 막연하게 유럽여행을 떠났는데 여행을 하면서 되게 행복했어요. 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구나! 좀 더 해보고 싶어서 호주에 가게 되었고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마치고 여행을 계속했죠.
그 후 한국에 돌아왔는데 용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다는 용기가.
영어도 잘하지 못했고 호주 가서 이렇게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고 유럽 가서 여행을 성공적으로 할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갔다 와 보니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아 세상은 원래 그렇구나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제 인생에 터닝포인트 였던 것 같아요.

Q. 대표님이 생각하시기에 도전이란 무엇인가요?
A. 사람들이 저한테 '용기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데 사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누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용기란 겁나는 것이 아니라 겁이 나도 하는 것'이라고 저도 겁이 나거든요 근데 그렇다고 안 하면 남들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거기서 딱 멈춰지는 것 같아요.
겁이 안 나는게 아니라 겁이 나도 하는 것이거든요. 겁이 나도 하는 게 도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Q. 최근 학생들이 대학이 꿈이 되어 정작 진정한 꿈, 자신이 원하는 꿈이 없는 학생들이 많은데 앞으로의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그런 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왜냐면 사실 학교공부가 사회의 성공기준은 아니거든요.
근데 마치 어른들은 공부를 잘해야만 성공한다고 공식같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사실 저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니까, 남들이 보기 어때서, 그냥 모든 조건과 기준을 남한테 맞추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행복의 기준이 남에게 맞춰져 있는 나라잖아요. 남보다 좋은 차, 남보다 좋은 집, 그게 너무나 어리석은 것 같아요. 내 인생이 남을 대신 살아주지 않거든요.
근데 행복의 기준은 남한테 맞춰져 있고 그래서 내가 돈을 100만원 벌어도 만족을 못 하는 게 200만원 버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옆에 300만원, 400만원 버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행복의 기준을 나한테 찾아야지 남한테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행복하면 그것만 해도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학생들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직장, 안정적인 수익 다 필요 없고 내가 이 일을 할 때 행복한 일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 갈 수많은 학생 그리고 청년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하나의 경험은 하나의 지혜라고 말을 하잖아요. 저도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자살하는 사건들을 보면 과연 그 사람들에게 시간을 돌려줬으면 뭘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근데 그 돌아간다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게 청춘이잖아요. 지금이 아니면 도전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여행이라던가, 연애, 독서, 친구들과의 추억거리 하나마저 청춘이라서 누릴 수 있고 양말 파는 장사도 청춘이라서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경험들을 많이 해보고 스펙트럼을 넓혀야 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때 돼서 사업을 하든, 대기업에 취직하든, 자기 일에 더 충실해질 수 있고, 후회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거구나라는 생각으로 파고들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도전할 수 있는 인생게임의 코인을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인생을 많이 즐기고 경험을 쌓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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