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대해부]<1>일해재단에서 미르재단까지..‘정권 수금 창구’로 전락한 전경련 55년 검은 역사
2016-10-11 17:14
아주경제 주진 기자 =‘대한민국 재계의 본산’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55년 역사는 정경유착의 검은 그림자로 얼룩져 있다.
산업화 초기 경제발전 역군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나팔수’이자 ‘정권의 모금창구’로 전락했다는 오명으로 설립 55년 만에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일본에 있던 고(故) 이병철 당시 삼성물산 사장은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한 뒤 귀국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기업인들을 풀어주는 대신 공장을 건립해 속죄하고 단체를 만들어 경제 재건을 위해 국가 산업정책에 적극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같은 해 7월 17일 이를 이행할 기업협의체로 전경련의 모태인 경제재건촉진회를 꾸렸고, 8월에 이 사장은 일본 게이따렌(經團連)을 모델로 삼아 '한국경제인협회'를 창립했다. 1968년 대기업 이익을 대변하는 현재의 전경련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정부에 대한 협력’이라는 태생적 배경을 지닌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산물인 셈이다. 설립 이후 55년 동안 역대 정부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정부가 필요로 할 때 재벌들의 돈을 모아주는 모금 창구로, 정치적 민원의 해결사 역할을 자임해왔다.
1988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나서 모금한 사실이 5공 청문회에서 밝혀졌다. 전두환 정권은 연간 운영비용으로 당시 돈 100억원(3년에 걸쳐 300억원)을 확보하기 위해 대기업들에게 자발적으로 모금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이 때 현대그룹 및 삼성그룹이 15억을, 럭키금성그룹(현재GS․LG) 등이 12억을 부담하기로 결정했는데 국제그룹이 5억을 내려고 하자, 일해재단 초대 이사장인 최순달이 면박을 줬다는 일화가 회자된다. 결국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은 기부금을 적게 냈다는 이유로 1985년 국제그룹이 해체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995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을 제공한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기소되어 유죄 선고를 받았다. 노태우정권 당시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와 SK그룹 장남인 현 최태원 SK 회장의 결혼 이후 SK는 제2이동통신사 선정 등 각종 특혜로 오늘날 국내 3위의 재벌로 성장했다.
1995년 전경련의 대국민사과 이후에도 불법자금스캔들은 계속 이어졌다. 1997년 15대 대선 때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23개 대기업에서 166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세풍사건, 이른바 ‘차떼기’로 유명한 2002년 불법대선자금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2011년에도 전경련이 주요 회원사들에 로비 대상 정치인을 할당하는 문건이 폭로되어 물의를 빚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토지이용 규제완화, 금산분리 개정, 공정거래법 개정은 물론 법질서 확립과 노동자 임금인상 자제 및 대졸 초임 동결을 관철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로비 활동을 벌였다. 그 대가로 서민을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을 하는 미소금융재단 설립에 앞장섰으며 국책사업인 4대강사업에 계열사인 대형건설사들을 대거 참여시켜 입찰 담합을 주도했다.
전경련의 정경유착 논란은 박근혜 정부 들어 두드러졌다. 경제 분야에서는 청년희망펀드 모금과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산파역을 맡았다.
지난해 박근혜정부 교과서 국정화 ‘홍보대사’를 자임하고, 야당 후보 총선 낙선운동에도 앞장선 자유경제원에 매년 20억원씩 지원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노골적인 관제 집회와 시위를 주도한 우익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차명계좌를 통해 억대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전경련 지원자금은 어버이연합의 사무실 임대료와 시위 동원인원 인건비 등으로 사용됐다.
게다가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 설립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법인에 1000억여 원의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은 삼성이 204억, 현대 111억, SK 111억, LG 78억, 롯데 45억, GS 42억, 포스코 30억, 한화 25억, KT 18억, CJ 13억 등 총 770억여원에 달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과거 서슬이 퍼런 전두환 정권 때 일해재단이 500억 원을 모으는 데 3년이 걸렸다”면서 “그런데 이번에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이 그 2배가 되는 800억 원을 모금하는 데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경련이 사회공헌기금이라고 해서 약 3조 가량의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회공헌기금을 가지고, 이것이 로비자금, 압력단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완전히 변질화되어 가고 있다"면서 "그러니까 이제는 전경련을 해체할 때가 되었다"며 즉각적 해체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