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당 이활의 생애-105]50일간 동남아 통상사절단 단장으로 참가
2016-08-30 16:56
아주경제신문-한국무역협회 공동기획 (105)
제6장 재계활동 - (100) 통상사절(通常使節)
제6장 재계활동 - (100) 통상사절(通常使節)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무역협회가 국제협력사업(國際協力事業)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1년 이래의 일이었는데, 당초엔 수출상품의 판로개척(販路開拓)과 국위선양(國威宣揚)이라는 초기 활동으로 통상사절단(通常使節團)을 파견하기 시작했는데, 1967년대 이후는 종래의 통상사절단과 그 성격이 다른 세일즈맨단으로 성격을 전환하게 되었다.
세일즈맨단은 수출업계 실무책임자로 단원을 구성하여 상품 견본을 직접 들고 주요 수출지역을 순방하면서 현지 수입상들과 상담(商談)함으로써 수출 가능상품의 시장성(市場性)과 기존 수출품에 대한 현지(現地) 성가(聲價)를 파악하는 적극성을 띠었다. 통상사절단은 성격상 정부가 표면에 있었지만 세일즈맨단은 협회가 주도하여 구성하였던 것이다.
1966년에는 동남아 지역과 중남미 지역에 각각 큰 규모의 사절단이 파견되었다.
단 장 이 활(李 活) (한국무역협회(韓國貿易協會))
부단장 이진화(李珍華) (상공부(商工部))
단 원 정규호(鄭奎浩) (외무부(外務部)) 장성숙(張成淑) (진동(振東))
장경호(張敬浩) (동국제강(東國製鋼)) 김남수(金楠洙) (대성산업(大星産業))
유치운(柳致云) (유한방직(柳韓紡織)) 상주식(尙柱植) (한국메리야스)
김기성(金基成) (삼성물산(三星物産)) 이재현(李在顯) (한국직물수조(韓國織物輸組))
간 사 허영정(許永亭) (무역협회) 윤형재(尹炳宰) (KOTRA)
국가를 대표한 통상사절단이고 보면 시장 개척을 위한 국제친선단(國際親善團)이라고 봄이 옳았다. 방문국의 정부를 예방하고 경제단체를 방문, 간담하는 것이어서 사절단은 예의를 갖추고 위신을 잃어서는 안되었다.
목당은 부득이한 경우 말고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일일이 통역을 거쳐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었으나 통역이 시원치 않아 의사 전달에 정확을 기하지 못한다는가 할 때는 직접 영어를 쓰곤 했다.
목당의 영어는 이미 앞에서 말한 대로 세련된 영국 본고장의 말이어서 상대방을 놀라게 하는 데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 목당의 처신은 당당했다. 수행하는 간사(幹事)가 목당을 거들어 주려고 해도 목당은 여행가방까지도 그에게 들게 하지 않았다.
“내 일이랑 걱정 말고 단원들 일이나 거들게.”
통상사절단이란 스케줄에 쫓기는 고달픔이 따른다. 부인에게 동정을 알리는 여행지에서의 엽서에서 목당은 피곤함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을 본다.
목당이 통상사절단 단장으로 밖에 나간 것은 1962년 5월의 유럽 지역 통상사절단과 1966년의 동남아지역 통상사절단의 두 차례이다.
그동안 회원 상사들의 급성장으로 통상사절단 파견의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해외 각국에서 들어오는 사절단을 맞는 일, 그리고 한·일 무역협의회(韓·日 貿易協議會)와 한·일 합동 경제간담회 등 국제협력 사업을 무역협회는 담당해야 했다.
한국무역협회가 당당하게 한국 재계(財界)를 대표하여 일본 게이단롄(全國經濟團體蓮合會)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제외교(經濟外交)에 임했다는 것은 일종의 경이(驚異)라고 하겠다. 일개 업종단체가 그 나라 재계를 대표하여.